사람의 얼굴이나 풍채가 훤하여 보기 좋게 생긴 사람은 잘생긴 사람이고, 얼굴이나 생김새가 잘나지 못한 사람은 못생겼다고 한다.
물론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유행과 관점에 달라진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잘생기고 못생긴 것도 운명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 손주를 보러 갔더니 손주가 하는 말이 걸작이다. 자기 엄마와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잘생겼다고 말하고 자기를 포함해서 아빠와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못생겼다고 구분해서 말을 하는 바람에 한참을 웃었다.
이제 겨우 삼십 개월이 되어 가는 아이가 어떤 기준과 눈썰미로 구분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서다. 그리고 손주는 자기가 한번 말한 것은 절대 바꾸지 않고 말해서 다시 한번 웃었다.
손주는 자기가 판단해서 말한 것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것 같다. 한번 잘생겼다고 말한 사람은 잘생긴 사람이고 못생겼다고 말한 사람은 그저 못 생긴 사람일 수밖에 없다.
손주와 몇 번 만난 또래의 아이가 있는데 그 친구는 잘생겼느냐고 손주에게 묻자 "부끄러워해"라고 말한다. 친구에게는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을 판단하지 않고 성격을 말해준다.
아이들 눈에는 그들만의 시선과 눈짓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부모나 조부모와 이모나 삼촌에 대하여는 과감하게 미추의 잣대를 들이대고 친구에게는 미추가 아닌 성격을 들이댄다.
손주의 말 한마디로 잘생겼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희희낙락 웃는 얼굴이고 못생겼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울상을 지으며 웃는 얼굴로 손주를 대할 수밖에 없다.
양가의 가족은 손주를 귀엽고 예쁘게 바라보는데 손주는 반대로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냥 바라보지 않고 미추의 잣대를 들고 바라본다.
아이가 어떤 눈과 시선과 기준을 내세워 잘생기고 못 생긴 것을 구분하는 것인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아이들 눈에도 아이들 시선에 맞는 기준과 판단이 은밀하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손주가 들이댄 잣대에는 자기를 돌봐주거나 많이 놀아준 사람은 잘생긴 사람으로 자기와 많이 놀아주지 못한 사람은 못생긴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요즘 TV를 시청하다 보면 머리나 얼굴은 분명 여자인데 남자인 경우가 있고 남자처럼 머리가 짧고 얼굴은 분명 남자인데 여성인 경우도 있다. 사람의 외모나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는 미의 기준은 이전보다 현재가 더 복잡하고 어렵다.
얼굴이나 풍채가 잘생겼다고 공부를 잘하거나 돈을 잘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주에게 잘생긴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니 기분은 좋다. 못생겼다는 말보다 그래도 잘생겼다는 말이 듣기에 더 좋은 것이 아니던가.
손주를 설득하려고 "할아버지 잘생긴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손주는 칼로 무 자르듯이 "아니야 할아버지 못생겼어"라고 단정해버린다.
손주가 잘생기고 못 생긴 사람을 구분하는 것보다 인성이 좋고 나쁨을 구분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잘생긴 사람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못생긴 사람이 못 사는 것도 아닌 세상이다.
내가 생각하는 잘생긴 사람은 마음이 무던하고 변치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신뢰할 수 있고 믿음이 간다. 사람 사이에도 물 흐르듯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의 강물이 흐른다.
손주도 사람의 외모로 잘생긴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자기 기준에 맞고 마음이 잘 맞는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앞으로 돈독한 삶을 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