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은 만물의 근원을 이루는 신령스러운 기운이고, 산천초목이나 무생물 따위의 사물에 깃들어 있는 혼령이란 뜻이다. 봄은 신령스러운 꽃의 정령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 계절이다.
아침에 구봉산에 올라가서 능선길을 걸어가는데 흰색의 벚꽃이 피어나서 장관을 이루었다. 봄은 무엇보다 하얀색 벚꽃이 수를 놓으면 세상이 밝아지고 화사해진다.
그간 우중충하던 나뭇가지에 흰 벚꽃이 피어나니 봄의 교향악이 목소리 톤을 높이며 계곡으로 울려 퍼진다. 꽃은 생명의 정수를 터트리는 열락의 낙원이자 봄의 기운을 여는 신령스러운 정령이다.
봄은 따뜻한 바람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얀 벚꽃이 꽃가마를 타고 밀려온다는 생각이 든다. 매화나무에 핀 흰 꽃을 보고 나서 몇 발자국을 걸어가자 노랗게 핀 산수유꽃이 눈에 들어온다.
봄소식을 알리는 정령은 노랗고 하얗게 핀 꽃의 나뭇가지를 따라 밀려오는 것 아닐까. 집에 와서 달력을 보니 어느덧 춘삼월이 가고 사월이다.
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라고 노래했다.
시인이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것은 병과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참혹한 상황에서 황무지로 변한 자연을 바라보며 생명의 잉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시구로 표현한 것 아닐까.
봄꽃이 피는 순서를 보니 진달래꽃과 개나리꽃과 매화꽃과 산수유꽃이 한꺼번에 피어나고 다음은 건물이나 공원의 모퉁이에서 백목련이 피어난다. 그리고 이어서 하얀 벚꽃이 무더기로 피어난다.
벚꽃이 오늘 필까 내일 필까 서로 눈치를 보더니 봄비가 내리자 이튿날 한꺼번에 피어 산과 거리를 수놓았다. 다른 꽃보다 벚꽃이 피면 계곡과 거리는 흰색으로 물들어 간다.
봄은 흰 꽃의 정령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불쑥 내민 듯하다. 산에 올라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벚나무에 핀 하얀색과 나무마다 샘물처럼 솟아나는 연두색의 물결이다.
산은 서서히 하얀색과 연두색으로 덧칠을 해가고 나뭇가지마다 연두색의 싹을 틔우고 대지는 풀들이 연두의 새싹을 틔우며 봄날을 노래한다.
봄의 교향악은 나무나 풀뿐만 아니라 바람이나 새나 다양한 것에서 들려온다. 그중에 꽃은 가장 화려하고 확실하게 봄을 대변하는 정령이다.
봄날에 집 밖에 나가면 피부로 불어오는 바람결은 부드러워졌고 대지는 하얀색 꽃이 피어나 밝아졌고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의 얼굴도 밝고 가벼워졌다.
시골에서 자란 탓에 봄날이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떠오른다. 황톳길에서 종달새가 아지랑이를 따라 하늘 높이 올라가며 지저귀던 모습과 산과 들녘에 덧칠하듯 핀 벚꽃과 복숭아꽃의 화사함이다.
봄꽃이 어느 시간에 피는지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벚꽃이 만개했을 때는 계절과 시름과 우울함을 잊게 한다. 벚꽃이 흰색이 아니고 다른 색이면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일까.
산에 올라가 흰색으로 가득 찬 벚꽃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다른 색깔로는 채울 수 없는 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흰꽃이 공간을 채우는 것과 다른 색이 공간을 채울 때의 느낌은 다르다.
흰색은 바라볼수록 마음에 가득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색은 흰색에 비해 마음에 부족함과 덜 채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벚나무에 핀 흰색의 창연함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정령의 마술이자 채움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계곡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동무생각"이란 가곡을 흥얼거리게 된다.
봄의 교향악은 매년 울리지만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높고 푸르게 들려오는 것 같다. 봄을 대변하는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나 생명의 향연을 노래하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옛 시절을 떠올려본다.
봄은 정녕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봄의 교향악은 누구를 위해 울려 퍼지는 것일까. 따뜻한 봄날이면 묻는 물음표지만 오늘따라 그간 겪어온 봄날의 교향악을 생각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