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려도 괜찮아 1
"빨리빨리 해." "착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바보라고 그래."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해보고 말해."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했던 말이다.
성격 급하고 똑 부러지는 엄마에게 느리고 순하디 순한 딸들이, 특히나 더 약하고 영글지 못한 둘째는 더 자주 이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둘째다. 딸이 아니 딸만 넷이 있는 집의 둘째.
엄마는 딸 넷을 얻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 마냥 새끼들을 키웠다. 넷이나 되는 딸들을 잘 키워내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다짐하며 억척스럽게 열심히 사셨다. 원래 엄마의 급하고 정확한 성향도 있지만 그 성향에 딸이 넷이나 생겼으니 그냥 대충 살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 경숙 씨는 시골로 시집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첫 딸을 얻었다. 그러나 아들을 못 낳았다고 시아버지의 달갑지 않은 눈길을 받아야 했다. 어릴 적부터 똑순이에 뭐 하나 대충 하는 게 없던 경숙 씨는 늘 칭찬의 소리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자식 낳기로 시아버지의 불만스러운 표정과 말을 듣게 된 것이 억울하고 속상했으리라.
그렇게 소중한 첫 딸을 낳고도 시아비의 눈길을 잘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둘째는 아들을 낳으리라 다짐했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도 딸! 아니 딸 쌍둥이!!
엄마 말로는 청천벽력이었단다. 초음파 기계도 없던 시절 뱃속 아기가 사내놈인지 계집아이인지도 알리 없던 그때 뱃속에 아이가 둘이나 있을 꺼라고는 상상도 못 한 엄마는 유난히 힘든 배를 움켜쥐고 둘째라 더 힘든가 보다 여기며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힘든 임신기간을 가지셨단다.
꿈에도 몰랐던 두 개의 심장! 그 두 개의 심장의 존재를 안 건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하나를 낳고 이제 다 끝났다 했을 때다. 하나를 간신히 낳고 끝났구나 분만의 고통을 놓으려던 때 의사가 전해 준 말은 "하나 더 있는데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그 순간, 딸 하나에 또 딸 하나가 추가되는 기분은 어땠을까?
시골에서 시댁살이를 하고 있는 경숙 씨에게 딸아이 하나 낳고도 눈치 주던 시아비가 있는 집에 딸을 둘 더 안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정말 난감했을 거라 짐작이 간다. 손녀 하나에도 달가워하지 않는 시아비에게 손녀가 셋이 됐다 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엄마는 그 의사의 말이 청천벽력 같았단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시절이었으니까...
쌍둥이를 낳고 엄마는 몸조리나 제대로 하셨을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의 상황이나 마음 상태로는 충분한 몸조리가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쌍둥이를 낳고 엄마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다짐하셨단다.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댁 농사를 지어주며 조금씩 푼돈을 받고 살던 그 시절 딸아이 셋을 제대로 키워내려면 시골생활을 접고 도시로 나가 제대로 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엄마의 계산 아래 소 한 마리 판 값을 들고 아빠와 함께 대전으로 나오셨단다.
농사일만 짓던 순박한 시골청년 인영 씨는 똑 부러지는 아내를 맞아 예쁜 딸 셋을 얻었지만 부모의 만류에도 아내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대전으로 엄마 아빠와 세 딸의 삶의 터가 바뀌었다.
시골청년 인영 씨를 도시의 직장으로 취직시키기 위해 엄마는 또 없는 인맥을 긁어모아 부탁을 해서 농사만 짓던 인영 씨를 회사에 취업을 시킨다. 그렇게 부부는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공간에서의 삶을 미래의 기반을 만드는 터전으로 삼고 열심히 달렸다.
엄마는 앞에 떨어진 인생의 불 등을 끄며 살아내느라 늘 마음이 급하셨다. 잠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는 엄마. 아파도 가만히 누워계시지 않는 엄마. 한 때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안 가 "왜 그렇게 가만히 안 있어요. 아프다면서 좀 누워서 쉬지." "또 어디가? 엄마 그만 좀 누워서 쉬어. 피곤하다면서 그건 왜 해."
그런 말을 쏟아내며 엄마는 뭐가 저리 할 일이 많을까? 저 바지런함은 좀 안 줄어드나? 억척스러운 엄마의 성향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아이 둘 낳아 기르고 있는 현재 나는 그때의 20대 30대의 어린 경숙 씨가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며 불안했고 힘들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제는 엄마에게 좀 쉬라고, 인생을 즐기라고, 그만큼 열심히 사셔서 이만큼 이루었으니 이제는 누리고 사셔도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늘 준비하고 대비하고 성장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여전히 못 견뎌하신다.
'엄마 이제는 좀 쉬어도 괜찮아요. 조금 늦게 일어나도 괜찮고 여행 다녀도 괜찮고 맛있는 거 먹고 싶음 마음껏 드셔도 괜찮아요. 이제는 자식 걱정 미뤄두고 엄마 아빠 본인들만 생각하며 사셔도 괜찮아요.'
이리 말하는 우리의 말이 자신이 해온 평생의 업을 그만두라 하는 거 마냥 서운해하신다.
나이 40이 넘은 자식들을 두고도 아직 엄마 손에 두고 조바심 내는 모습이 안쓰러워
"우리도 이제 나이 40이 넘었어요. 걱정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다 알아서 살아. 우리 걱정 말고 엄마 편히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하고 이야기하면 "누가 뭐래? 그래 너네 알아서 살아. 엄마가 참견해서 싫으냐? 다 너네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경숙 씨의 인생을 보면 그래 평생 열심히 달려오던 이유와 목표가 자식 잘되게 키우는 거였는데 그 목표물을 놓으라는거니 쉽지 않을 터이고 평생 해오던 일이 평생 바라보던 게 그것이니 쉽게 내려놓아지지 않으리라 짐작은 한다.
나이가 들면서 총명하고 똑 부러지던 엄마는 기억이 가물가물,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아차차 까먹었네.
실수하고 잊고 하는 빈도수가 많아지며 불안해하신다. 젊은 우리도 가물가물 실수하고 잊어버리고 하는데
엄마는 그 횟수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내가 예전 같지 않구나. 나도 늙었구나. 이러다 치매라도 오면 어쩌지.
또 다른 걱정을 시작하셨다.
70 평생을 열심히 살아낸 몸도 머리도 그 기능이 한창때와 같을 리가 있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과정인 것을... 자신의 느려지고 둔해짐을 느끼며 실망하던 엄마도 그 느려짐에 적응을 조금씩 해가고 내려놓고 계신다.
"엄마! 칠십 평생 그렇게 열심히 사셨으니 이젠 좀 느려도 괜찮아요. 느리면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들어와요. 더 진하게 다가오고 더 기쁘게 다가와요. 평생 발등에 불 떨어진 거 마냥 열심히 살아내시며 딸들 키우고 집안을 지키셨으니 이젠 좀 느리게 가며 엄마를 아끼고 주변을 충분히 마음에 담아보세요."
"느려도 괜찮아요. 경숙 씨." 그리고 "고마워요 경숙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