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결단

느려도 괜찮아 5

by 맘이 mom e
children-306607_640.jpg

조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단다.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우리 친정 부모님의 첫 손녀, 우리들의 첫 조카. 그래서 더 특별하고 사랑스럽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조카다. 어릴 적 기저귀는 물론 놀아주고 데리고 다니고 4층 계단을 달려 올라가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렇게 우리의 관심을 받던 순하디 순한 조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단다.


왜? 도대체 왜?

네가? 무슨 일 있어?


온 가족이 걱정을 했다.

학교생활이 힘들단다. 고등학생이 되고 학교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냥 요즘 아이들의 나약함이려니 생각하고 말렸다.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아 조금 힘들다고 과정을 안 마치고 중간에 포기하는 건 안돼.


열심히 성실히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 우리 집안에서 학업 포기라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에 다들 멘붕이 왔다. 그 부모는 어땠을까?

걱정 많고 여린 셋째 동생은 딸의 그런 결정에 당황했고 많이 속상해했다.

달래도 보고 혼내도 봤는데 안 듣는단다. 워낙 착하고 순해서 말을 잘 듣는 편인 데다가 사고라고는 쳐본 적 없는 조카가 대형 사고를 치게 생긴 거다.


식구들의 걱정과 우려는 인정으로 변했고, 기다려주자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봐. 그렇지만 너는 다시 돌아올 거야.

우리 조카니까 우리 손녀니까 우리 딸이니까.


그런데 우리의 기대가 틀렸고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던 조카는 성실한 학생이었으나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다. 소중한 조카이기에 기대하는 것이 있었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조카를 보고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잘하는 건 있을 거야 그걸 찾을 때가 있겠지 하고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학업을 포기하겠다니 대체 왜?

아이는 학업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학교생활이라는 틀이 본인을 너무 힘들게 했고 교우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틀을 나오고 싶었던 것이었다.


이 또한 나약해 보일 수 있으나 우리가 가진 저편의 생각은 그래도 자기 생각이 생겼다는 게 대견했고 자기주장을 고집할 수 있는 용기가 대견했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부모는 아이의 생각을 받아들여주었다. 걱정 반 의심반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고 아이가 바뀌기 시작했다. 방안에 숨어있던 아이가 방문을 닫고 입을 닫았던 아이가 웃기 시작했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자기의 속도대로 자기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태어나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 사랑이 크다 못해 아이를 어느 순간부터 조정하려 하고 가두려 하고 틀 안에 넣으려 한다.


아이는 자기 속도에 맞지 않는 기관의 속도에 숨이 찼을 것이고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흘러가는 학교의 빠른 진도 속에 그보다 조금 늦은 자신을 자책하고 실망하고 포기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다 이것이 아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결심하고 행한 조카의 결단이 이제는 용감했다 여겨진다.


아이는 학교에서의 틀에서 나와 자신의 속도대로 다시 학업에 더 열심히 스스로 열중했고, 자신의 삶을 보다 계획적으로 꾸미기 시작했고,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고 알아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조금 느려도, 틀에서 나와있어도, 괜찮다.

저마다의 속도가 다를 텐데 버거워하는 아이도 지루한 아이도 있을 텐데 학교라는 틀 안에 갇혀있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각자의 속도를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환경이 아니기에 그 틀 안에서 잘 적응하고 해 나가는 아이들은 더없이 감사한 일이고 그에 너무 버겁거나 맞지 않으면 탈출하여 자신의 꿈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와 속도가 맞지 않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쉬어가겠다 조금 천천히 가겠다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잠시 쉬었다가는 용기도 조금 느리게 가려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이제 19살이 된 조카의 2년 전 결단을 보고 나는 또 배운다.


조카는 현재 자신의 생각대로 학교 과정에서 나와 스스로 공부하여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갈 점수를 얻어놓고 배우고 싶은 악기나 하고 싶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만이 아니다. 아이가 살아갈 수 있는 밑바닥의 힘은 바로 믿음이다.

어디에 있든 어느 상태에 있든 느리던 빠르던 아이가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너를 언제까지나 어디까지나 내가 믿고 있다. 너를 언제나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라는 믿음.

이것이 아이를 자라게 하고 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내 자식의 미래와 현재를 믿음으로 지지해주리라 다짐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71세 경숙 씨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