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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근한 수록 Feb 23. 2022

포기할 이유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합리화와 변명이 응축된 세계에서 내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우울감이 섞인 생각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쉬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 실제로 요즘의 나는 포기할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이었으니.



한 번 해 볼래?

 '한번 해 볼래?'로 시작하는 예기치 않은 기회에 나는 항상 겁을 냈다. 중학생 때 멋모르고 들어갔던 핸드벨 동아리 선생님은 나를 국제대회에 내보내고 싶어 하셨다. 나는 부모님이 반대하신다는 핑계로 하지 않겠다 답했다. 도배 보조로 따라나갔던 일터에서, 천장에 벽지 한 번 발라보겠냐는 사장님의 제안에 선뜻 그러겠다 말하지 못했다. 창업 준비를 하겠다는 친구가 같이 제안서를 내자고 했을 때도 나는 마땅한 아이템이 없다며 거절했다. 나는 내 삶을 확장하는 데 수많은 기회들이 찾아왔음에도 포기할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거절하고 내 안으로 숨을수록 그 기회가 점점 줄어들어 버렸다. 하루에도 열 번씩은 찾아왔던 작고 큰 기회들이 어느 날부턴가 다섯 번, 세 번씩 줄기 시작했고, 결국 한 번 해보겠냐는 제안은 내 삶 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는 오히려 이를 방패 삼아 더 집 안으로 숨기를 택했다.

'거 봐. 아무도 제안하지 않잖아. 그래서 난 하지 않는 거야.'

외부를 향한 질타는 내가 숨기에 완벽한 변명이 되어 날이 갈수록 높고 견고해졌다.


 특히 올해 2월에는 어딘가에 홀린 듯이 포기할 이유만을 찾아댔다. 숨어내는 데 급급한 삶을 살았다.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기 시작했고 나는 하나의 유력한 원인을 찾았다. 바로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지, 처음 시작하는 날부터 모든 건 자로 잰 듯 완벽하고 첨예하게 존재해야 했다. 금을 밟거나, 상황 속 기출 변형이 등장하면 나는 하던 모든 일을 멈춰버렸다. 완벽히 잘 해내지 못할 바에야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새롭게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을 때 역시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마음에 안심이 됐고, 그렇지 못할 바에야 아무런 게시물도 올리지 않는 편이 내겐 더 좋았다. 브런치 역시 모자란 글을 써 내려가기엔 창피해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글들이 많다. 좋은 평가에 대한 강박, 완전해야 한다는 욕심은 결국 내 삶을 압박하고 축소한다. 포기할 이유를 재생산한다.



 강박을 내려놓기

 강박을 내려놓는 길이 곧 포기할 이유의 대립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강박은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는 걸까?

 나는 긍정의 말 건네기를 시작했다. 특히 '괜찮아.'라는 말은 내게 굉장히 낯선 단어다. 타인에게는 자주 활용하지만, 나에게 건넸던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소리 내어 내게 읊조리는 '괜찮아'는 어색하고도 낯간지러웠다.

 '내 포스팅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완벽하다는 건 결국 내가 세운 뾰족한 기준일 뿐이거든. 네가 꾸준히 도전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만족해.'

 오늘 아침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작은 위로를 건네보았다. 한두 마디의 긍정적인 위로일 뿐인데, 새삼 기분이 좋아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내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무엇이든 가볍게 시작해 볼 수 있는 용기가 한 꼬집 생긴다. 그와 동시에 깊은 자기 검열과 반성이 내 삶을 척박하게 하고, 얼어붙게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건 결국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다. 어떤 시작도 할 수 없게 하는 1톤짜리 철근을 내 몸에 매달아 둔 셈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면, 작은 실수들과 매끄럽지 못한 행동들이 용납되는 거라면 나는 조금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내가 원하는 곳까지 가볍게 날아가고, 이곳저곳 마음을 기울이고, 뿌리내릴 곳을 선택하며, 아니라면 다시 뛰쳐나올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완벽하지 않을, 지금으로도 괜찮을 용기를 냄으로써 나의 강박은 해방된다.



 시도할 이유 찾기

 강박적인 완벽주의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겁이 난다는 이유로 나는 종종 포기를 선언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포기할 이유를 찾아내기 전에 시도할 이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도전이나 새로운 기회가 불러오는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우연히 미라클 모닝에 대해 알게 됐다.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잠시, 어차피 또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막상 해 보면 내가 잘 해낼 수도 있는데, 나는 못해버릴 내가 겁이 나서 자꾸만 미루는 셈이다. 아침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 미루고, 굳이 이걸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는 마음에 또 미룬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포기할 이유를 계속 찾아내는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그렇다면 처음에는 왜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는 내 삶을 주도하고 싶어 했다. 회사와 집을 반복하는 그저 그런 부품 1이 아니라 자유롭게 내 시간을 사용하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다. 미라클 모닝은 내게 주체적인 선택과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임에 틀림없었다. 아침에 일어날 시간을 내가 직접 선택하고, 일어난 다음 어떤 시간을 보낼지 선택하고, 그 일을 행하는 시간을 가지며 나는 꽤나 주체적이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미라클 모닝의 긍정적 측면을 떠올리자 바로 미라클 모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이 글 역시 미라클 모닝이 아니었다면 작성을 뒤로 미루곤 했겠지.


첫 미라클모닝

 무슨 일이든지 상관없다.

 해볼까? 하고 고민했다는 건 내 마음이 나를 성장시키고 싶어 동동거리고 있다는 거다. 시도해볼까? 하는 마음의 불씨를 살려서 한 발이라도 내딛어보자. 그게 나를 위한 기회의 창을 여는 첫걸음이 될 테고 다시 다양한 기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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