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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거청년 Mar 22. 2023

타지 생활의 외로움은 크리스마스 마켓의 뱅쇼로 달랜다.

스위스 몽트뢰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는 지난 지 오래지만,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는 지금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그 당시 쓴 글을 다시 뒤적여보았다.



처음 스위스에 와서 굉장히 놀랐던 부분 중에 하나는 마트 영업시간이었다. 대부분의 마트가 저녁 7시면 문을 닫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6시에 퇴근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집에 오면 거의 7시가 되어서 짧은 시간에 부랴부랴 장을 보거나 여차 하면 늦어서 장을 못 보는 날들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10시나 11시까지는 대부분의 큰 마트가 정상 영업을 하고 새벽에도 편의점이 열려있는 한국에 살다가 이곳에 오니 이런 것은 여간 답답한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위스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마트가 7시에 문을 닫으면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언제 장을 보는 거야? 6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7시인데 장 볼 시간이 없지 않아?”

돌아오는 대답은 놀라웠다.


“그래도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가족들이 있잖아. 늦게 까지 마트가 영업을 하면 그 사람들은 언제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 평일에 장 볼 시간이 없으면 토요일에 보면 되지~”


이곳의 사람들이 가족과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었다. 내게 내 가족과의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시간도 똑같이 보장해줘야 한다니. 이런 쪽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는 싶어 새로웠다. 이해는 되지만 여유롭게 언제든지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싶은 때에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편리했었던지가 생각나 새삼 한국에서의 삶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영국, 프랑스, 한국, 에스토니아, 볼리비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료들이 많다. 연말이 가까워오니 동료들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서로 물었다. 프랑스에 사는 조부모님 댁에 간다는 동료도 있고, 영국에 있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는 동료도 있었다.  유럽 내에서는 다른 나라에 가족들이 산다고 해도 비행기로 몇 시간만 가면 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당일만 쉬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큰 연휴는 아니다. 그런데 유럽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거의 설날이나 추석 같은 정도로 큰 연휴이다. 크리스마스 전 후로 1~2주일의 시간 동안 쉬면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만들어 먹고 좀처럼 바빠서 보지 못했던 가족들도 다 함께 모여서 시간을 보낸다. 그 때문에 12월 25일의 시내 한복판은 거의 조용하다.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같이 멀리 다른 나라로 일하러 오거나 공부하러 온 사람들은 긴 크리스마스 연휴를 같이 보낼 가족이 없다. 자칫하면 공허하거나 외로울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나는 다르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가족이 없는 사람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주재원 또는 유학생으로 이곳에 와 있는 친구들과 퇴근 후에 몽트뢰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만났다. 몽트뢰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정시마다 산타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케이블카에 연결된 썰매를 타고 지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숫가를 둘러싸고 170개가 넘는 가판대에서 초콜릿, 쿠키, 학센, 추로스, 수공예 작품, 현지 기업에서 만든 향초 등을 판매한다. 이곳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뱅쇼(Vin Chaud)이다. 뱅쇼는 말 그대로 따뜻한(불어로 chaud는 '따뜻한'이라는 뜻) 와인(Vin)인데 이것을 한 모금 마시면 추운 스위스 날씨에 얼어있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 뱅쇼와 함께 치즈가 듬뿍 든 바게트, 누텔라를 찍은 추로스, 육즙이 가득한 스위스 소시지, 그리고 달달한 군밤까지 풀코스로 먹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마음도 든든해졌다.

그래, 지금 당장 여기 가족들이 함께 살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한테 가족이 되어주면 되지.

아 참, 군밤은 한국에서나 스위스에서나 매한가지로 맛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뱅쇼뿐만 아니라 꼭 군밤을 먹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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