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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거청년 Mar 22. 2023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만난 지 3분 만에 인생상담을?

포르투 공항에서 만난 프로축구팀 선수 개인 물리치료사와 나눈 직업 고민


처음 만난 사람과 만난 지 3분 만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주말 동안의 짧은 포르투갈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포르투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끼니를 때울까 해서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있잖아, 혹시 나 손 씻고 오는 동안 내 짐 좀 봐줄 수 있어?"


혼자 여행할 때의 단점 중 하나가 이거다. 화장실에 가거나 잠시 쓰레기를 버리거나 면세점 쇼핑을 하는 등 짧은 순간에도 짐을 봐줄 사람이 없어 바리바리 싸서 다녀야 하는 것, 그 어려움을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뜻 응 봐줄게, 대답했다.


그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아니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나한테 맡긴 거지? 나도 처음 보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잖아', '만약에 소매치기가 나타나서 순식간에 가방을 가져가거나 하면 그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히 아무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그가 자리로 돌아왔다. 휴.


나는 비행기 시간까지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던 터라 그와 서로 어떤 햄버거를 시켰는지, 어쩌다 포르투갈에 오게 된 건지 등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소속 선수의 개인 물리치료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나지만, 해당 팀은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선수가 뛰고 있는 곳이라 더 관심 있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포르투갈 사람인 그는 가족들을 보러 잠시 휴가를 내어 포르투갈에 왔고, 다시 일을 하러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유명한 팀 소속 선수의 개인 물리치료사가 되고 나서 예전보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가족들을 보러 오기도 쉽고, 연봉도 훨씬 많이 받게 됐지만 어쩐지 자꾸 고민이 생긴다고 했다.


"물론 지금 내 직업이나 상황이 나 개인한테 있어서는 너무 좋지. 많은 사람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이 일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여행하면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가볍게 이야기할 때는 많지만, 이렇게 진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드물고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사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만약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나라나 병원에서 일한다면 생명을 살리고 사람들을 도와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그런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당장 내일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도 않을 텐데. 내 개인의 편안함과 만족감만을 생각하고 산다면 지금의 상황은 최고지만 자꾸 고민이 돼.'


하루 이틀 만에 생긴 고민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표정과 말에서 느껴졌다. 그는 분명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자기 직업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고 사는 사람을 만난 지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만난 지 3분 만에 생판 남인 나와 이런 깊은 인생에 대한 고찰을 나누게 되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민망하지만 내가 완전히 남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나도 스포츠계열에 종사하고 있는 터라 그의 말이 남일 같지 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스포츠는 직접적으로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짓는 분야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경기를 보면서 잠시나마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즐길 수 있게 할 수도 있고, 나와 관계있지도 않은 누군가의 성공과 뛰어난 기량발휘를 위해 진심을 다해 응원할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도 하지 않는가.




'내 직업이 가지는 의미'라는 무거운 고민거리를 안고 돌아왔는데,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을 강타하는 스위스의 강한 바람과 차가운 공기가 내가 현실로 다시 돌아왔음을 알려줬다.


직업의 의미에 대한 깊은 생각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직장인인 나에게는 당장 내일 출근 준비가 더 시급하다. �


안녕 포르투, 마지막까지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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