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파레노 Philippe Parreno

by gigi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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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Parreno


필립 파레노는 예술 작품과 전시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해 질문해왔다. 조각, 드로잉,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그는 전시 공간을 하나의 유기적이고 살아있는 구조로 구성한다. 개별 작품보다 전시 전체를 주요 형식으로 삼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은 공동 창작과 대화로, 작품 간의 상호 작용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까지 포함하는 다층적이고 비선형적인 서사를 구축한다.


전시장은 깜빡이며 움직이는 설치작품 마키(Marquee) 시리즈를 통해 하나의 키네틱 공간이 된다. 전통적인 극장 간판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조명 구조물인 마키는, 초기 할리우드 영화관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연상시키면서도 문자나 특정 메시지를 담지 않은 섬광의 찰나로 구성된다. 순수한 빛과 형태가 조합된 작품은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기술과 연동되어 사이키델릭한 풍경을 연출한다. 전시 공간과 작품, 관람객 간의 관계를 유동적으로 빚어내는 마키는 파레노가 상상하는 메타 세계가 구현된 현실이다.


실험적 영상 작업 《귀머거리의 집(La Quinta del Sordo)》 (2021)은 철거된 고야의 집을 배경으로 공간, 이미지, 시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망명 직전 ‘귀머거리의 집(La Quinta del Sordo)’에 거주하며 1819년부터 1824년까지 검은 그림’(Las Pinturas Negras) 연작을 그렸다. 1909년 집이 철거되면서 공간은 사라졌으나, 벽에서 분리된 그림들은 현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에 보존되어 있다. 파레노는 초고속 카메라(500,000fps)를 사용해 이 작품을 촬영하고, 3D 기술을 활용해 철거된 집을 가상적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그 공간에서 울렸을 소리를 복원하는 방식으로 사라진 공간을 소리와 빛으로 다시 불러온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기계 장치를 통해 나타나고 사라지는 《귀머거리의 집》은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탄생한 이미지들이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하며, 기억과 시각적 재현, 그리고 이미지 존재 방식의 감각적 지평을 확장한다.


기존의 전시 형식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독창적인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필립 파레노는 1990년대부터 뉴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선형적 서사 구조와 실험적 전시 형식으로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기여해왔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등 주요 미술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으며, 2019년 MoMA 커미션 작업 Echo에서 데이터와 감각을 결합한 자율적 존재를 통해 기술과 인간 경험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을 제시했고, 2024년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개인전 Voice에서는 시간, 공간, 이미지가 유기적으로결합된 파레노의 몰입형 세계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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