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하자 – 2

알바의 달인이 되어 보자

by 겨울밤

몇 개월간의 침체기에서 벗어나 흐름을 탄 김에 재빠르게 할 일을 찾았다. 바깥에 나갈 구실을 고정적으로 만들면 일상으로의 회복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당근에 구인 글이 올라오는 족족 지원했다. 우선은 근무시간이 너무 길지 않게 체력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었다. 하나는 카페였고, 또 하나는 반려견 의류 매장이었다. 둘 다 같은 날 면접을 보게 됐는데 사람 구하기가 어려웠는지 그 자리에서 바로 같이 일해보자는 피드백을 받았다. 카페는 심지어 면접 본 자리에서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다음 날 점심때부터 하루 4시간 반 일하기 시작한 카페에는 알바생만 나를 비롯해 네 명이었다. 한산하기 그지없는 동네에 이렇게 잘되는 카페가 있는 줄은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 지 5년 만에 처음 알았다. 유명한 저가 커피 브랜드인데, 알바 하기 전 숙지해야 하는 커피 레시피만 엑셀 파일로 여덟 페이지에 달했다. 카페에서 경력자를 선호하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손놀림이 제법 노련했다. 오랜만에 일해서인지 능숙한 이들 사이에 껴서 그런지 초반엔 내가 봐도 내가 어수룩해 보였다. 약간의 수다 떨 틈도 없이 손님이 몰려 시간이 금방 갔다. 간만에 뭔가 일다운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기분이 개운하더라.

카페 일이 끝나면 바로 반려견 의류 매장엘 갔다. 그간 아예 아무것도 안 하다가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둘 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재미있어 보여서 놓치기가 아까웠다. 일하게 된 빈려견 의류 매장은 처음 듣는 브랜드였지만 사람 옷만큼이나 디자인이 예뻤다. 문제는 유동 인구가 적은 데다 손님이 거의 없어 지루해 죽을 맛이라는 거였다.


오후 4시나 5시부터 밤 10시까지 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뭐라도 하자 싶어 진열된 제품들을 노트에 적어 가며 명칭과 가격을 외워도 보고, 전산상 재고가 일치하는지 박스도 싹 정리해 보고,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이렇게 저렇게 다시 만들어보고, 올리브영처럼 상품별 팻말에 스토리를 넣어 구현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카피 문구도 작성해 보고, 계절별 혹은 용도에 따라 옷들을 범주화하면 좋겠다 싶어 카테고리화도 해보고, 카펫과 담요를 돌돌이로 한번 밀어도 보고, 손이 닿지 않는 곳들은 먼지 쌓이지 않게 에어건도 쏴보고, 전시된 인형 옷도 바꿔 입혀 보고 이래저래 사부작거렸으나 지루한 건 여전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곳에서 계속 일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딴짓할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 할 일마저 없으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끔 들르는 단골손님과 수다를 떨거나 산책 가던 길에 제집처럼 항상 오는 멍멍이들과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게 그나마 낙이었다.

두 곳 다 매일 일하는 것은 아니어서 중간중간 평일에 시간이 빌 때는 급히 구인공고가 뜨는 당일 알바를 하기도 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3시간 동안 수건 개는 알바를 했다. 헤어숍이나 숙박업소 등 업체별로 들어가는 세탁한 수건을 말끔하게 쫙 펴거나 접어서 수량을 맞춰 쌓는 일이었다. 말로 설명만 들었을 땐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등 근육과 허리 근육을 요하는 일이었다. 등이 얼마나 결리던지 3시간을 겨우 버텼다.


일하기 전날, 세탁소 사장님은 전화로 나에게 고정으로 매일 나와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사장님도 제가 일하는 거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으니 제가 일하는 거 보고 결정하시죠”라고 던졌던 게 약간 후회됐다. 혹시 또 나와달라고 말하면 뭐라 둘러댈까 고민했다. 지루하고 발은 아파도 의류 매장 일이 편하긴 했다. 이튿날 세탁소 사장님이 또 나와줄 수 있냐 물었지만 공교롭게도 마침 다른 일을 하기로 했던 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36,000원 벌기가 이렇게 힘들다.


앉아서 몇십, 몇백을 벌 때는 1~2만 원이 적게만 느껴졌는데 몸을 움직여 시간을 꽉 채워야만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만원은 귀하다 못해 쓰기조차 아까웠다. 얼마 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집안일하고 낮 사이에 짬이 나면 운동을 하거나 강아지들 산책을 시켰다. 당근 거래도 활발히 하면서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조금 피곤해도 하루하루가 오늘만 같으면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행여나 다시 번아웃이 오면 어쩌나 약간은 두려웠다. 그래서 더 루틴을 지키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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