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아저씨
여행을 하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뭐, 사람마다 다르니 그것이 제각기 다르겠지. 아마 그럴 거다. 그래도 꼭 있었으면 하는 것, 적어도 내게는 꼭 좀 있었으면 하는 것이 뭘까 싶었다.
오늘은 4월 1일,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 만우절이다. 그리고 한국은 이미 어제부터 만우절이었고 말이지.
집에 가고 싶었다. 향수병은 아니고, 아니 이것도 향수병이라면 향수병이겠지. 그냥 뭔가 이제 좀 지루해져 버린 탓이다. 집이라던지, 아니면 예전부터 가고 싶던 북극이라던지, 그것도 아니면 파푸아 뉴기니라던지, 그것도 아니면 저기 어디 땅끝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했다.
너무 지루해진 나머지, 본 적도 없는 곳까지 그리워하는 멍청이가 된 거다.
아마 예전, 일에 파묻혀 허덕거리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며 역정을 내겠지. 일이 잘못되어도 누군가 죽을 일은 없다. 큰돈을 손해 보는 일도 없다. 단지 지루할 뿐으로, 뻔해지는 일상이 지겨워지는 것 만으로 이상한 향수병에 걸렸다.
그래서 만우절을 핑계로 메신저 첫말에 소망을 적어봤다. "한국에 돌아갑니다." 돌아갈 것도 아니면서 그냥 투정을 좀 부려본 거지.
그리고 자고 일어나니 메시지가 꽤 쌓여있었다. 한낮이었던 한국에서 밤새 날아온 것들이었다. '아...... 공들여 소망을 적어놓고도 잊고 있었네.' 한국에 오냐, 왜 오냐, 무슨 일 있냐, 같은 질문과 걱정들. 자기가 첫말에 장난을 쳐놓고는 잊어놓고, 평소 같지 않게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이래저래 바보스럽게 말이야.
이른 아침부터 세수도 미루고 미안하다, 고맙다, 만우절이잖냐, 같은 답신을 보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얼마나 심심하면 볼리비아에서 만우절 행사를 하고 있겠냐?" 그 메시지를 보고 혼자 실없이 낄낄거렸다. 맞다, 녀석 말이 맞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살만하냐?"
친구가 대답했다.
"그냥 애 보는 낙으로 사는 거지."
몇 마디 글자에 녀석의 웃는 표정이 묻어났다. 언제부터인지 녀석과 대화하다 보면 애가 뭘 했다, 어쨌다, 그랬다 같은 이야기만 잔뜩 했으니 그 표정이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가수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중에 "별 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여행길을 가자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여행길에 중요한 것이야 많겠지. 친구도 있고 체력, 식량, 지도, 따져보려 하면 이것저것 참 많을 테지만, 내게는 가장 먼저는 호들갑이 있었으면 한다.
지루하고 말고는 온전히 내 문제였던 걸지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끄적거리는 것마저 둔해져 버린 것도 전부 내 탓이었는지도.
집에 가고 싶다며, 재미없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 사이에 내가 놓친 생각과 풍경은 얼마나 되었을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네, 내 삶이 지루해진 건 내가 지루한 놈이 된 탓이었구나.'
다시금 소망해본다. 내가 어딘가로 보내지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어디서든 별 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그것으로 나의 이 작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추신, 다시 쓰자. 다시 쓰고 지우고 쓰며, 그렇게 호들갑을 떨자.
추신의 추신, 거짓말해서, 잠시라도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