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령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잘 알아.

by 서량 김종빈

사람들은 말이야, 은근히 자신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게 안쓰러운 잠깐.


애써 자기 자신을 지우고, 정말 이게 맞는지 갸우뚱거리다가, 그럼에도 지워가다 간신히 흔적만 남았을 때, 먹먹한 마음으로 외로움에 파르르 몸을 떨어대는 사람들.


예전에 그런 노래가 있었다. 고 신해철 씨의 민물장어의 꿈이라는 노래였는데, 나를 깎고 잘라서 세상에 맞추는 것이 그의 전부인양 이야기하는 노래였다. 참 서러운 노래, 심지어 서글프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서글프거나 그런 일체의 것들과는 상관없이 나 역시 나를 깎고 자르기에 바빴으니 징징거리는 것이 민망한 시간들이었다.


좋은 모습, 이쁜 모습, 설령 위선일지언정 그것으로 나를 지우고 부정하는 것이 일상이어서 윤곽이나 흐릿하게 남으면 다행일까.


근데 그렇게 애를 써가면 살았건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낙서 하나만 남았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에도 나는 무엇하나 나아지지 못하고 그나마 있던 것조차 지운 거지. 심지어 의기양양하게, 믿어 의심치 않는 멍청스러움이 기특할 지경으로 말이다.


겁 많고, 그래서 으르렁거리는, 그래서 세상 날 선 것들에 곤두서 있는, 스스로가 그보다 더 곤두서기를 바라는 나를 안간힘 써가며 지운들 무슨 효험이 있을까. 나는 내 목덜미를 잡아끌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좋은 사람인양 굴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이쁨 받으려고 정작 나를 다그치고 해치는 것이 이렇게나 외로워질 줄 알았다면 나는 조금 달랐을까.


그래도 아주 조금은 희망이 남아있었는지, 서른이 넘어서 나는 내가 되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내가 되는 나 말이다.


물론 그 덕분으로 나는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 매사 으르렁 거리는 위험한 짐승, 작고 좁은 나쁜 짓에만 기력을 쏟는 소인, 그딴 것들이 되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에 매달리어 나를 내치는 짓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야 듣다 보면 성가시기는 하다만, 내가 나를 붙드는 것으로 어찌어찌 외롭지 않은 것이지.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아서 나를 부정하기 혈안일 때마저 있으니, 나마저도 나를 아니라 하면 내가 있을 곳이 세상 어디에 있기는 할까 싶다.


그러니, 나를 다독이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내가 나에게 더 이상 무엇을 해줄까 싶다. 가끔은 나를 긍정하는 것으로 생을 이어가기도 하니까, 정말 그러니까.


추신, 다들 남 이야기를 쉽게들 하잖아요. 그러니 쉽게들 잊어버리고요. 결국은 남이니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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