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는 굳이 않겠지만 다들 알잖아요. 우리가 어찌될지.

by 서량 김종빈

'이야기를 좀 해볼까, 아니다, 좀 더 두자.' 그렇게 밍기적거리며 나름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이미 내용은 알고 있었다. 개봉도 전부터 수많은 추측과 원작 이야기, 심지어 유출본에 어느 배우가 그간의 소회를 SNS에 올리기까지 했으니 알만했다. 더욱이 친절하게도 수많은 스포일러들이 영화를 분석까지 해주니 내용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내용을 알고 나자 망설여졌다. 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내가 바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고, 그건 내게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현실이 다소 팍팍하니, 영화만이라도 꽃밭이면 좋겠다는 것이 욕심이라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그간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시종일관 유쾌했다. 아니, 중간중간 찡하기도 했구나. 이미 누가 어떻게 된다는 걸 알고 나서 보려니, 왜 눈이 계속 그 인물만 쫒게 되는지, 거 참.

영화 내용은 이야기 안 하겠다. 더욱이 나처럼 나름의 마무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영화를 다 보고 늦은 밤 길을 걸어오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아부지도 보고 싶고, 동생도 매제도 보고 싶어졌다. 할무니, 할아버지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형들도 동생들도 보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난데없는 향수병이었다.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에서도 잘만 빈둥거리며 살던 나인데, 영화 한 편에 향수병이 도졌다.

내가 그간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십여 년 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히어로 영화들이 시리즈로 계속 나왔다. 근데 내가 오해했었다. 영화는 S.F.나 히어로물이 아니었다.

성장드라마, 정확히는 가족영화. 그냥 좀 특별한 힘들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하는 영화. 그러다가 다들 가족을 만들고, 찾고, 돌아가고, 지키고, 사랑하는 그런 가족영화. 마블이 본래 가족애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까먹고 있었다.

영화 끝에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거 해피엔딩 아니냐며 관객들에게 묻는다. 그래, 맞다. 해피엔딩이 맞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당신 말대로 해피엔딩이 맞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해피엔딩이 맞다.

영화가 끝나면 수많은 히어로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나름의 해피엔딩을 위해서, 가족을 만들고, 찾고, 돌아가고,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러한 내일을 위해서.

히어로 하나가 제멋대로에 고집만 부리고, 신경질만 잔뜩 부리다가, 부딪히고 다치고 상처 입고, 아프고 고민하고, 결국 가족들에게 친구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정말 히어로가 되었다.

십 년이 넘는 동안 영화 속 마구잡이였던 히어로는 어엿한 히어로가 되었다. 그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나는 여전히 못마땅한 녀석인 게 좀 큰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둘 다 엉망인 것보다 하나라도 나아진 게 어디냐 싶다. 늦었지만 이러다 보면 나도 나아지겠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강산이 변하고 히어로도 변하고, 나도 조금은 변하고, 변했나?,

아무튼.
세상 영원한 것은 없어서 영화는 막을 내렸고, 지구는 지켜졌다. 그리고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더딘 걸음이지만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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