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으면 좋겠다.
봉준호감독
얼마 전 한국에 있는 엄마랑 통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엄마, 아부지는? 아부지는 별일 없지? 아부지도 말은 안 해도 속은 좀 그럴 거야. 아들이라고는 하나 있는데,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이리 사니까. 엄마야, 나도 이제 모르겠다. 내가 뭐가 되려고 이러는지. 킼.”
“글쎄다, 뭐라도 되겄지. 아들은 뭐라도 되지 않겠어.”
35살의 철부지 아들, 환갑을 앞둔 엄마. 우리 모자는 마치 남의 집 이야기라도 하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래, 뭐라도 되겠지. 우리 엄마 맛있는 거 많이 사주려면 뭐라도 되어야지.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무서웠다. 이제 그만하게 될까봐, 더 이상 힘들어서 뭐라도 되는 걸 관두고 그냥 적당히 될 수 있는 것이 되고 말아버릴 까봐, 그게 너무 겁이 났다. 재능이나 요령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버티다 보면 살아있는 동안에 요행으로라도 기적같이 눈먼 기적이 한번은 와주겠지 생각했다. 아니, 그랬으면 하고 간절히 소원했다.
그런데, 버티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몰랐네. 수많은 재능들 사이에서 초라한 내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이제 친구들도 그만하자고, 이만큼 버둥거렸으면 그만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응원과 격려 속에 안타까운 마음들이 보였다.
얼마 전부터 그냥 좀 일찌감치 돌아와서 자기 회사 일을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어디서는 자그마한 사무소를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반은 농담이지만,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다시 오라는 소리도 여러 번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들이었다. 나 같은 놈을 써준다고 이리들 이야기해주는 게 참 고마웠다.
근데, 정말 고마웠는데, 그래, 정말 고맙고 감사했는데, 왜인지 속은 타들어가는 기분.
비참했다. 창피하고, 할 수 있다면 감쪽같이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그 고마운 이야기에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두어 달간은 마음을 못 잡았다. 어중간한 마음에 이야기 한 줄 쓰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 고마운 이야기에 이제 다 그만하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도 이제는 그만하고 돈을 좀 벌고 싶었다. 그래서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그렇게 남들처럼 살고 싶어졌다. 기약도 없는 글 한 줄을 써보겠다고 이렇게 세월을 삭히는 것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날은 퀴퀴한 답답함으로 길 가는 중, 옆에 늘어선 담벼락이라도 물어뜯고 싶었다. 한 밤중에는 시기심이 일어서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이라도 끌어내렸으면 했다. 반쯤은, 아니 어쩌면 온전히 미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편해지고 싶을 때, 이제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되는 것이 되고 싶을 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마음에 들어올 때, 일상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잘들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얼마나 비참하던지.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봉준호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작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도둑가족으로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탄했던 게 얼마 전 일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봉준호 감독이라니. 짧은 이야기 하나 써내지 못해서 종일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나는 그저 막연히 감탄할 뿐이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저는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면 그걸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뇌가 가려워서 견딜 수 가 없어요.” 그런 천재도 30년을 영화만 묵묵히 만들었다.
하물며 재능 하나 없는 내가 우는 소리를 하자니, 목울대를 세게 후려 맞은 기분. 비참이고 뭐고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라, 내 연모하는 사람아, 잘 가라, 돈도 집도, 잘 가라, 내 적당한 마음으로 이뤄낼 수 있었던 모든 세상아.
가자, 기약 없는 곳으로, 이해받지 못해도, 동정만 가득한 세상이어도, 손가락질만 하며 비웃는 사람들뿐 이어도, 그만둘 수 없는 까닭은 그 끝을 보지 못했음이니, 가보는 수밖에.
살면서 우리 엄마 말은 대부분 옳았으니, “뭐라도 되겠지.” 했던 이야기도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언젠가 당신도 읽는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나 자신도 쓰여지겠지.
추신, 봉준호 감독님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