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건 때때로 참 아이러니하더군요. 특히나 잡으려고 하면 저만치에 가있다가도, 놓으려고 하면 끈덕지게 달라붙는, 그런 일들은 더욱 빈번해서 난감하기까지 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지요. 사실 사람이 싫었습니다. 사람도 싫고 저도 싫고, 그냥 좀 지칠 대로 지쳐서 도망치듯 온 곳이 볼리비아였습니다.
어떤 날은 핸드폰 연락처에서 사람을 고르고 쳐내가며 하루 온 종일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릇은 작은데 온갖 인연을 다 담아보려고 욕심 부리다가 마음이 깨져버린거죠.
그래서 볼리비아에 오면 혼자 좀 지내려고 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알아달라고 애쓰는 일은 한동안 쉬어가려고 했지요.
근데 참 우습죠. 사람을 다 털어내려고 마음먹자마자, 세상에 왜 그렇게들 좋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던지. 또 그 좋은 사람들을 피하려고 해본들 인연은 어떻게든 닿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 중 당신이 있었습니다. 사실 본심을 말하자면,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좀 거북합니다.
제가 모난 탓에 저는 삶을 "살아낸다, 살아진다." 라 말하고는 하는데, 당신은 매번 "살아가자, 살아있다." 라고 하니까요. 항상 겁 많고 소심하고 으르렁거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제게 당신은 불편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참다못한 제가 이런 말을 했었죠.
"저는 세상에 꽃밭만 보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를 느껴요. 가시밭 이야기에 귀를 막는 사람들만 보면 현기증이 생기죠."
그때 당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쌤, 그래도 꽃밭을 봐야지요. 설령 지금은 가시밭 위를 걷더라도 꽃밭을 보고 가야지요."
그제야 알았습니다. 모르는 게 아닌데도, 이렇게나 애를 쓰고 있구나. 그리고 나도 조금 더 애를 써봐야겠다 싶었지요.
당신이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스무 살 시절에는 "이왕 사는 건데 웃으며 살지 않으면 아깝잖아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말이죠. 그 사이 좀 지쳤던 건지, 다쳤던 건지, 아니면 잊었던 건지, 이렇게까지 변심했었네요.
공자님이 그러셨던가요. "사람 셋이 길을 가면 그 중 스승이 하나 있다." 라고 말이죠.
당신은 정말 좋은 스승이었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친구였구요.
그런 당신도 이제 다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할 테고, 꽤나 바빠지겠지요. 어쩌면 어떤 날은 눈앞이 흐려서 꽃밭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 때를 위해 우리가 밤새가며 이야기했던, 어떤 밤은 바보처럼 낄낄거리며, 또 다른 밤은 서로 얼굴이 붉어지도록 열을 올려가며 했던 이야기들을 몇 자 적어봅니다.
하나. 우리가 인간이 악하다고 믿는 것은 악하다는 것을 당연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는 악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둘, 욕심은 꽤나 큰 동력이 되기에 좋지만, 그것을 제대로 쓰기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지혜와 더 견고한 양심을 지녀야 한다.
셋,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을 그의 소중한 가치를 무참하게 짓밟는 일이고, 때문에 그만한 각오 없이는 저열한 유희에 불과하다.
넷, 하나님은 계신다. 하지만 안 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선해져야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다섯, 내 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지만 그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여섯, 탕수육은 찍먹을 우선 하는 것이 좋다. 소스를 통째로 부어버리는 부먹은 찍먹의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일곱, 사내놈들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좀 있다. 우리는 그 점을 잊지 말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다.
여덟, 사랑하는데 있어서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없이 약자가 되어보자. 기꺼이 그리하자.
아홉, 폭력은 나쁜 거다. 어떤 명분 앞에서도 나쁜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폭력이 필요한 폭력의 세계, 폭력의 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열, 사람에게 친절하자. 그러나 호의를 권리로 아는 이에게 친절은 더 이상 친절일 수 없으니 그때가 친절이 가치를 잃는 순간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렇게 생각나는 몇 가지만 적어봅니다.
앞으로 당신이 건강하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무너지지도 꺾이지도 않기를, 무엇보다 이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기를 그저 바라겠습니다.
세상에 우리가 나눌 바보같은 이야기는 한없고, 그러니 우리는 실없이 낄낄거리며 서로의 안부를 계속 묻겠지요.
그러니 건강한 모습으로 자주는 못 봐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입니다.
살아가며 함께 안부를 물을 친구 하나가 또 생겨서 참 감사한 1년 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아우님.
- 항상 부족한 형, 김종빈 드림
추신, 제가 그랬죠. “위선을 택할 바에는 차라리 위악을 택하겠다.” 라고.
그러자 아우님이 그랬죠. “쌤,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네, 맞지요. 슬프지요. 그러니 다음에 만날 때는 굳이 위선도 위악도 필요 없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