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 썸 러브, 어색한 우리사이, 하나의 해답.
로켓트
새벽부터 일어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그 이야기들을 한데 다 모으면, 얼마나 될까, 그 문장들을 한 줄로 세우면 달까지 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은하수를 건널 수 있을 만큼 길지도 몰라, 그러면 견우와 직녀는 매일같이 라도 만날 수 있겠지. 아니야,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많아서 저 위 그 누군가에게 이미 기도마냥 닿았을지도 몰라. 그래, 어쩌면 이미 그랬을지도 몰라. “
그냥 궁금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썼는지, 그리고 지금도 쓰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또 어째서 그 중 하나가 되었는지.
내게 전에 누가 초심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누가”가 아니라 “누구들”.
글은 그 글쓴이를 닮는 걸까, 스스로를 지독히도 혐오하는 내게 내 글이 마음에 들 리 없다. 그러니 매번 어떤 이야기를 써놓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때마다 나는 질리지도 않고 괴로워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성실해서 우스울 지경이다.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나의 누군가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썼던 이야기들을 떠올려 봐요.”
처음이라, 잘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억지로 쓰기 시작했으니까. 중학교 2학년 은사님의 숙제였다. 단 한 줄만을 쓰더라도 매일같이 일기를 쓸 것. 정말 단 한 줄만 써도 되었다. 오로지 썼냐, 쓰지 않았냐 그뿐인 숙제였다.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었던 건, 그때의 나는 일기를 분풀이 정도로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세상 거의 대부분의 것에 화가 나있었다. 이유는 많았지만 항상 화가 나있었다. 그리고 그 것을 매일 밤이면 울분을 토해가며 적었다. 때로는 한 문장을 꾹꾹 눌러써가며, 어떤 날은 날선 이야기들만 잔뜩, 그러다가 온갖 욕설을 써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음료수나 같이 먹자며 부르시고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종빈아, 원래는 일기를 훔쳐보면 안 되는데, 선생님이 좀 봤다. 미안하다.” 나는 뜨끔했다. 때때로 욕설까지 쓰여 있는 이야기, 아마 글에 소리가 있다면 내 일기에서는 매일같이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을 거다. 선생님은 내가 긴장한 것을 알아채셨는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근데, 종빈아, 그래도 괜찮다. 일기가지고 너에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너무 멀리 가려는 것 같아서 잠깐 음료수나 같이 마시자고 하는 거야. 앞으로 종종 마시자.”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게 나의 첫 글이었고, 첫 독자였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기왕이면 그걸로 먹고 살만큼 돈도 벌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게는 단번에 그것을 이뤄낼 만한 재주가 없었다. 그렇다고 개운하게 포기할 용기도 없었다. 그 탓에 나를 미워하는 나는 내 글 또한 미워했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들에게 들은 말, “처음에 썼던 이야기들을 떠올려 봐요.”
생각해보니 처음 내게 글이라는 건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화를 내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했다. 지독히 아픈 날도 있었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날도 있었다. 부수기도 했고 다시 쌓아올리기도 했다. 끌어안기도 했고 저편 끝까지 내달려 도망치기도 했다. 세상 한복판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다락방 구석진 곳에 틀어박히기도 했다. 뭔지도 모를 내 글들은 다시 보면 하나같이 전부 나였다.
요즘도 나는 이야기를 쓴다. 좋은 글이 아니어도, 돈이 될 만한 글이 아니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한 그 하나의 이유로 이야기를 쓴다. 일기를 쓰고, 소설을 쓰고, 어떤 날은 턱없이 부족한 몇 문장만을 쓰기도 하면서 나를 보는 나날이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그 순간을 남기는 우리에게는 고작 한 줌의 글이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잔뜩 화가 나있던 그 날의 여름을 기억하듯, 또 언젠가를 위해 오늘을 남기는 내가 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은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게 즐거운, 그리고 당신에게도 즐거운 그런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졌다. 아픈 내게, 사랑하는 내게, 살아가는 내게, 그 어떤 나에게라도 말을 걸어 수다를 떠는 그런 글 말이다.
어쩌면 세상에는 이미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달에 가고, 은하수를 건너고, 저 위의 누군가에게까지도 가닿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래서, 그리고 그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