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이 꾸이 하고 우니까, 꾸이래요.

유희

by 서량 김종빈

어? 어라?

아침에 일어나서 노트북을 켜고, 다큐멘터리를 하나 봤어. 근데 보다 보니 남미 이야기가 나오고, 알파카니 꾸이니 하는 동물들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원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지라 흥미진진하게 보는데, 갑자기 "어라?" 싶어 지는 거야.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사람이 막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들리는 거지. 잘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단어들이 뜨문뜨문하게 말이야.

"아, 스페인어구나." 그리고 "아, 내가 지금 남미에 있구나." 뭐랄까, 이상할 건 없는데, 좀 웃긴 거 있지. 한국에서 세계기행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와." 하던 건 그럴 수 있잖아. 근데 남미까지 와서 살면서 남미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게 좀 웃긴더라.

아니, 아니, 물론 그럴 수야 있지. 왜 한국에서도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 보면서 혼자 넋이 빠져라 보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근데 그래도 좀 이상한 기분.

심지어는 말이지, 안데스 산맥 그 언저리에서 집 하나를 지어놓고 알파카니 하는 것들을 풀어놓고 키우는 사람들을 눈 앞에서 정말로 봤거든, 근데도 신기하더라.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프리카의 물소 떼가 나오더라. 그것도 봤는데, 눈 앞에서 물소 떼가 차도를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리며 본 건데, 마사이족 아이들이 그 물소를 치며 앞 뒤로 따르는 것도 봤는데, 그것도 신기하더라.

그리고 신기해하는 나도 좀 신기하고 말이야.

전에 한번, 아니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종종 징징댄 적이 있었어. 이야기를 좀 쓰고 싶은데, 성에 차는 글 한 줄 못 자아내는 게 열불이 나서 말이야. 짜증이 치솟고 맥은 빠져서 그냥 다 하기 싫은 기분이었지.

근데 그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예전에 처음 뭔가를 쓰기 시작했던 순간의 글을 한번 찾아보기를 권한다고 말이지. 그래서 찾아봤거든, 얼마나 촌스럽던지 읽다가 창피함을 못 견디고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날 정도였지.

심지어 가끔씩 사랑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 글을 나만 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더라.

하지만 그중에도 어떤 건 지금보다 낫더라. 지금보다도 더 촌스럽고 억지스러운데도, 지금보다 그 결은 더 진하고, 그 감촉은 더 단단해서 읽는 중에 웃게 되는 이야기였어.

그때 나는 정말 뭔가를 쓰는 걸 좋아했구나 하고 알 수 있을 만큼 말이야.

남미 한복판까지 와서 살면서, 그렇게나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으면서, 그럼에도 이렇게나 허덕대었던 것은 어째서였나.

즐기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그저, 마냥 즐기며 호들갑도 떨고, 시시덕거리는 것을 멸시하고 경시했나 보다.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이지.

본 적도 없는 백경을 쫓느라 잊었었네. 이곳에 온 것도, 볼품없는 이야기라도 무턱대고 쓰기 시작한 것도 전부 즐거워서였다는 걸 까먹고 있었어.

굳이 초심이니 어쩌니 같은 소리를 안 하는 게 좋겠지. 그저 즐겁다, 재밌다는 감각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할 거야.

초조해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 어떤 결과도 기대 않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을 거야. 하지만 기껏 여기까지 와서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것은 왠지 내게 미안하다. 아직도 이렇게나 수다스러운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더 미안한 일이고 말이야.

예전에는 입버릇처럼 하던 말, "이왕 사는 건데 웃지 않으면 아깝잖아." 그래, 가까스로 떠올렸다.

억지로 즐기라고 까지는 하지 말자. 다만 즐거워도 괜찮아. 그것만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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