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허...이것 참, 일단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MRI를 한번 찍어보시고 다시 이야기하시죠." 의사 선생님에게서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날이 오다니 참 삶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모를 일뿐이던가, 아무튼 모를 일이다.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눕자, 기계 안으로 몸이 들어간다. 깊숙이, 보다 깊숙이,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는 기분. '정말 이러다가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으려나.'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과거로 가는 일 없이 기계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저기, 환자분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 갑자기 환자분이라니, 나는 고작 한 시간 만에 환자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검사 결과를 한번 더 살피고는 이야기를 이었다.
"일단, 이런 병의 경우는 환자분이 자신의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시는 게 중요합니다. 시간이 그래도 좀 있으니 함께 방법을 찾도록 하시죠" 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생각을 할 여력도 없는지라 덜컥 물었다. "암... 인가요?"
의사 선생님은 입술에 힘을 주었다가 떼며 말했다. "상사병"입니다.
"네?" 상사병, 상사병, 가만히 있자. 생각을 좀 해보자. 그 예전에 어느 이야기에서 봤는데, 상사병이 뭐더라. 상사병이라면 그거 아닌가. 막 누구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다가, 마음을 못 전하고 끙끙대다가 아프고 그런다는 거.
"선생님, 상사병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 옛날에 갑돌이가 갑순이를 못 만나서 끙끙 앓다가 돌이 되었다는 그건가요?"
"네, 그겁니다."
"에헤이~!"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장난을 쳐도 이런 건 아니지 않나. 아니, 애초에 환자에게 장난질이라니, 이런 병원은 망해야지.
그는 내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이 별다르게 놀라지도 않고 내게 계속 이야기를 했다.
"물론 받아들이시는 게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발병률이 많이 낮아지고, 환자분처럼 심각한 상황까지 가시는 경우도 없으니까요. 저도 이 정도의 경우는 처음이라 사실 몇 번이고 확인을 해보았지만 증상도 검사 결과도 해외사례들과 일치합니다."
"아니, 선생님, 무슨,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아니 무슨 사람이 사랑 때문에 죽고 그래요. 무슨 시한부야, 아, 나 진짜, 선생님 보세요. 그냥 잠이 좀 많아지고 몸이 잠시 저렸다니까요. 에헤이 무슨, 진짜, 선생님, 아하하하, 장난치시면 안돼요 이런 걸로."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나는 막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상사병은 설화 같은 게 아닙니다. 신경계통 질환입니다. 유전적인 발병 요소도 있지만 보통은 후천적 요인에 의한 발병이 대부분입니다. 잠이 많아지는 건 점점 뇌 활동이 줄어들고 있어서 그런 겁니다. 몸이 저린 것은 신경계 마비 때문이고요."
나는 그제야 이게 장난이 아니란 걸 알았다. '지금 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이거 정말 현실이구나.' 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