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y 서량 김종빈

“선생님,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치겠습니다. 다 좋습니다. 상사병이 실제로 있고, 그게 위험하다는 것도 알겠습니다. 그래요. 전부 다 알겠는데, 그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병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는 안경을 살짝 고쳐 썼다. 그리고 코를 한번 훌쩍거리고는 대답했다. “그렇지요.”

“제 말이요! 선생님, 이건 뭔가 착오가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미혼이구요, 만나는 사람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리워하는 옛사랑 같은 것도 예전에 끝낸 지 오래인데, 이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선생님 이제는 저요, 혼자 사는 게 편한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냥 일하고 매달 월급 받고, 적당히 쓸 거 쓰고 모을 거 모으고, 얼마나 만족스러운 데요. 선생님, 이건 뭔가 착오가 있는 겁니다.” 나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사실, 아직도 상황이 납득은 되지 않는다만, 나보고 조만간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그걸 어떻게 “그렇군요.”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건...그런데요. 그게…….”, “아씨, 진짜! 콰다당” 내가 순간 또 벌떡 일어나면서 의자가 넘어지자 진료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죄송합니다…….”

“환자분, 전부는 아니지만 그 심정 이해합니다. 사실 상사병이라는 게 동서양 할 것 없이 그 세월 내려오면서도 밝혀진 게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나마 밝혀진 거라고는 뇌 중추와 신경계가 점점 잠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그 원인이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기인했다는 것, 치료를 위해서는 그 원인이 되는 사람을 만나서 충분한 이야기를 하고 미련을 풀어야 한다는 것. 그 뿐...” 그는 잠들어간다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뇌, 신경세포가 사멸한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평소라면 100%로를 발휘하던 세포들이 점차 80%, 50%, 이렇게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잠드는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미련” 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더 이상은 구체적이고 세세한 언급을 하지 못했다.

말꼬리를 흐리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전에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고, 그게 이제 와서 발병했다는 건가요?” 그는 또 다시 코를 훌쩍거리며 “네.” 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저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내 표정을 보면서 “네. 곡 다시 찾아주셔야 합니다.” 라며 담백하게 말했다.

병원 밖 주차장으로 나와 하늘을 보는데, 누런 하늘이 왜 그리 좋아보이던지. 우스운 일이다. 울 수 없을 만큼 우스운 일이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10대가 지나고, 사랑만 찾던 20대를 지나서,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싶은 30대에 들어왔다. 그리고 34살, 이제는 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안 해도 되는 것 같았고, 안하고도 살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이것도 괜찮겠거니 하고 살았는데, 그냥 그렇게 살아볼까 했는데, 그러면 이제 죽는단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정말 죽은 적은 없었다. 근데 씨발, 이제는 진짜로 죽는단다. 아, 정말 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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