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참. 허어... 이것 참, 유감이네. 내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팀장님은 전에 없던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내 사정을 한참이나 설명했고, 팀장님은 그걸 이해하는데 또 한참이 걸렸다. 내가 의사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친구가 내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휴직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사직서를 준비했습니다." 밤새 생각하고 생각한 결론이었다. 헤어진 옛 연인들을 찾아가서 만날지 어떨지는 둘째 치더라도, 살 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무실 책상을 병상삼고 싶지는 않았다.
보통이라면 인수인계니, 프로젝트 마무리니 하면서 한 달은 걸렸을 사직이 반나절만에 끝났다. 상사병이라는 말 같지 않은 희귀병 덧분일까, 나는 회사 어느 누구에게도 그럴싸한 위로조차 듣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건 좀 좋았다. 괜히 보는 사람마다 "힘내, 희망을 가져. 잘될 거야." 같은 소리를 하면 있던 희망마저 사라질 것 같았는데, 다들 상사병 같은 건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회사를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상사병이란 게, 그리고 그걸로 시한부까지 된 환자는 확실히 특이하기는 특이했나 보다. 접수창구에서부터 나를 알아보더니 번호 표고 뭐고 필요 없이 바로 전의 의사 선생님에게 안내받았다.
"환자분, 오늘은 좀 어떠세요?" 그는 정말 궁금해 보였다. 이런 희귀한 병으로 죽어가는 덕분일까. 인수인계도 않고 반나절만에 퇴사를 하고, 번호표도 없이 바로 진료를 받고, 이제는 의사 선생님이 이토록 지대한 관심을 가져준다.
"네, 어제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 같습니다. 이러다 점점 더 좋아지는 거 아닌가 몰라요."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를 않았다.
"그럼, 오늘 입원하시고, 보다 세밀하게 검사를 받으시는 걸로...", "잠시만요."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순간 나는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저는 입원은 하지 않겠습니다. 미련, 그 미련인지 뭔지만 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병원은 1주일에 한 번씩 꼭 오겠습니다. 중간중간 연락도 드리고요. 근데 저 입원해서 검사받고 약물치료에 통증 완화에 그런 거 안 하고 싶습니다."
그는 벙찐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환자분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게, 그러니까, 그러시면 더 안 좋습니다." 나는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미련, 그거 풀면 된다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는 것보다 옛 연인들 얼굴 한 번씩 더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요."
사실, 어제 친구 녀석이 내게 한 이야기를 밤새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오기가 생겼다.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누구인지, 그놈의 미련은 뭔지, 정말 사랑이었는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어 졌다.
앞으로 약 12달, 봄이 끝나간다. 아마 다음 해 이맘때면 알겠지 싶다. 내가 정말 사랑을 하긴 했었는지, 미련이 남을 만큼, 그 때문에 죽을 만큼 사랑했었는지.
어쩐지 좀 멋있어진 기분마저 든다.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러분, 오늘 모두 모이세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표하겠습니다. 옘병, 엉아가 돌아왔다. 크크크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