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by 서량 김종빈


"야,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모임에 늦게 도착한 친구 하나가 소란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랑은 분위기가 영 딴판이다. 아니, 정반대다. 평소같으면 친구들은 술에 취해 왁자지껄하고 있고, 그 와중에 나는 술잔만 앞에 두고 세상일이 다 재미없다는 듯 지루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초상집 분위기다. 그 와중에 나 하나만 시종 유쾌한 표정으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 두세 잔 정도 마신 것 같다. "어, 종헌이 왜 이렇게 늦었는데? 야, 못 들은 이야기는 다른 애들에게 들어라. 그러니까 내가 살려면 니들 도움이 좀 필요하다. 다른 거 없어, 니들은 다 알잖아. 내가 그 세월 사랑이니 어쩌니 하면서 질질 짜고 하던 거 다들 봤으니까 좀 도와주라. 그냥 기억나는 거, 내 짝사랑 이야기, 연애 이야기, 이별 이야기, 그 와중에 죽겠다고 쌩난리 피웠던 이야기까지 전부 부탁 좀 하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문자 주거나 전화 주면 된다."

"하아, 야, 김종빈..., 아, 씨발." 친구 한 녀석이 제 분을 못 이기고 울컥했다. "야, 야, 나 괜찮다고, 안 죽는다고. 나 안 죽어. 낄낄낄, 아직은." 늦게 온 녀석은 이제야 옆 친구에게 이야기 다 듣고는 더 이상 소란하지 않다. 운이 좋게도 여태껏 우리는 누구 하나 죽었다는 소식 없이 30대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 하나가 죽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상사병 같은 거라면 더더욱 말이다.

"야, 오늘 술 값은 내가 낸다. 오늘 이후로 밥은 니들이 사는 거다. 나는 이제 직장도 없고 사랑도 없고, 심지어 내일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내가 벌써 취했나 보다. 생각지도 않게 실언을 했다. "아... 미안."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하려고 기껏 애를 썼는데, 결국 내가 초를 쳤다.

"야, 니들 기억나냐? 종빈이 이 새끼 수영이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고 하루 종일 실종되었던 거, 나 그때 식겁했잖아. 이 새끼 죽은 줄 알고, 진짜 아찔했다." 한욱이가 갑자기 막 웃으며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종헌이가 말을 받았다. "나도 그때 식겁했어. 이 새끼 그때 라디오로 프러포즈하고 차인 거 전국구로 방송되었잖아. 나 같으면 쪽팔려서 그때 죽었을 거야. 야, 붕신아 그때 그냥 죽었으면 지금 죽니 마니 할 일도 없을 거 아냐.", "크크크킄." "킼킼킼." "끅끅끅, 이 미친 새끼 친구한테 말 이쁘게 하는 거 봐라. 와하하하."


그래, 이래야 우리 정다운 븅신들이지. 다행이다. 이 새끼들이 한결같아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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