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맴돌았다지만, 그러던 어느 날밤 거짓말처럼 사귀게 되었다지만 우리의 연애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요란해 보이기라도 할까 봐 꽤나 얌전한 사랑이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길 한복판에서 사랑한다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혹시라도 불행이 지나다가 우리를 알아채고 찾아올까 봐 숨죽인 채 단 둘이서만 사랑을 했다.
그렇게 숨 죽인 채, 하지만 매 순간 숨 가쁘게 서로를 찾았고, 그때 나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이 여자가 행복하기만 하면 나는 아무래도 좋아, 그래 아무려면 어때.' 그래, 나는 반쯤, 아니 그보다 좀 더 미쳐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헤어졌다. 거짓말처럼 만나서 더 거짓말처럼 헤어졌다. 그것도 온전히 내 고집으로 말이다. 당시 나는 군에 있었는데,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게 당연했다. 휴일마저 출근하는 지경에 이르고, 그 사이 수영이는 그런 나를 그저 참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수영이는 내게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그저 미안하다고, 담담히 말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날 나는 끝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 사랑하니 어쩌니 해도 결국 나는 이것밖에 해줄 수가 없구나.' 그리고 또다시 드는 생각. '내 곁에 묶어두지 않았다면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더 많이 사랑받고 더 많이 웃었을 텐데, 그랬을 텐데.'
이 장면이 내가 내 인생에서 손꼽아 후회하는 장면이다. 바보같이, 뻔뻔하게 놔주지 말았어야지, 왜 그런 생각을 해가지고 말이지. 아마 당시 일과 긴장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탈진상태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뒤로도 한 달은 어찌어찌 버티었는데, 결정적인 일이 터졌다. 간신히 휴일에 쉴 수 있게 되어 함께 영화관에 갔는데, 전화가 울렸다. 부대에서 작은 일이 터져서 그걸로 통화가 좀 길었는데, 전화를 마치고 뒤돌아 그녀를 보니 '이게 지금 뭐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그녀는 팝콘과 콜라를 품에 끌어안고 서있었다. 표정은 애써 웃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가야 돼?" 그녀는 살얼음 위라도 걷듯 내게 물었다. "아니야." 나도 애써 웃었지만, 그날 영화를 보고 그녀를 집 앞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헤어졌다.
한 사람은 등을 돌린 채 하늘만 보고 헤어져 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등 뒤에서 옷자락만 붙잡고 땅만 보며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렸다. 참 묘한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