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수영이야. 누가 봐도 수영이야." 한욱이가 장담했다. "맞아, 수영이다." 종헌이가 말을 거들었다. 다른 녀석들도 수영이하고 이야기해보면 될 거라며 부추겼다.
"야, 근데 수영이 시집갔잖아." 친구 완이가 끼어든다. "아마 애도 있을 텐데, 막 찾아가도 되나? 그건 아니지 않냐?"
"하긴, 나도 생판 모르는 놈이 내 와이프 찾아오면 짜증 날 것 같다.", "그치, 좀 찝찝하지.", "그래, 좀 그래." 다시 또 소란하다. "야,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 정도는 좀 봐줄 수 있잖아. 이제 와서 다시 연애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야기만 잠깐 하자는 거잖아." 종헌이가 짜증 난다는 투로 말하자 다들 더는 말하지 않았다.
글쎄다. 무슨 미련이었을까. 그대로 매몰차게 밀어내고 도망친 거? 아니면 더 잘해주지 못한 거? 그도 아니면 둘 다? 글쎄다, 이제와서는 감도 안 온다. 전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다시는 볼 일도 없고, 정말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어쩌라는 건지. 상사병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자각도 없는 병이었는지 싶다.
"종빈아, 나, 연락처 안다. 대충 어디 사는지도 알고."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표정으로 한욱이를 쳐다봤다. "니가 어떻게 아냐?" 한욱이는 자기 머리를 한번 막 헝클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아니, 지난번에 우리 사무실에 집 알아보러 왔더라고, 수영이도 나보고 놀라더라."
"한번 더 생각해보고 정말 만날 거면, 그럴 자신 있으면 알려줄게. 수영이가 딱히 너한테 이야기하지 말라고도 안 했으니까.", "야, 자신 있고 없고 가 어디 있어? 만나야지, 야 지금 우리가 뭐 나쁜 짓하자는 거냐? 사람 죽는다잖아." 종헌이가 또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라, 그치, 자신 중요하지. 그렇게 내 멋대로 도망치고, 그래 배신한 거지. 거짓말한 거지. 갑자기 힘이 빠진다. 이 나이가 되면 이제 뭐든 무덤덤하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마음이 밋밋할 줄 알았는데 겁이 난다.
한욱이가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종헌이는 혀를 한번 차고는 소주를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