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애들이 이렇게 놀이터에 모여서 노는구나. 컴퓨터 게임이니 학원이니 해서 애들이 더 이상 놀이터에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나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뭐, 우리 애 이쁘지?" 그녀는 자기 아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래도 미운 4살이라고, 매일매일 전쟁이야. 엄마로 사는 게 보통일이 아니더라. 정말 이쁜데, 가끔씩 너무 밉고, 엄마가 되는 게 정말 어려운 거더라."
"다행이다." 나는 혼잣말처럼 미처 말을 멀리 내뱉지도 못하고 웅얼거렸다. 마치 듣지 않았으면 하는 듯이 입가 언저리에 간신히 말을 내놨다.
"그래, 다행이지. 고마워, 그러니까 너도 이제 그만해라." 그녀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질려하지도 않았다. 그냥 정말 그만해도 괜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야기는 들었어. 나, 너 결혼하는 거 보고 싶다. 그리고 누가 너 결혼해서 잘 산다는 소리 하면 그거 듣고 나도 다행이구나 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만해, 나는 이제 기억도 안나, 아니다, 기억도 안 난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도 이제 정말 정말 아무렇지 않다. 나 이렇게 행복한 거 봤으니까, 너도 이제 그만해."
"세인아, 이제 집에 가자. 오늘은 돈까스먹자." 아이는 군말 없이 달려왔다. "아저씨께 인사하고.", "안녕히 가세요." 두 사람 뒷모습을 보니 참 보기 좋았다.
'정말 다행이다.' 행복해서, 안 아픈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뭔가 조금 괜찮아진 기분이었다. 이제 나도 그만 미안해해도 될 것 같아서, 차라리 잘한 것 같아서, 그 못나고 매몰찼던 것이 이제는 용서받은 것 같아서 마음 한켠이 조금 저릿해도 시원한 기분이었다.
한욱이는 그녀에게 내가 죽느니 어쩌니 소리는 안 했다고 했다. 그냥, 종빈이가 좀 멀리 가는데 꼭 한번 보고 싶다는 말만 전했다고. 그러고도 안 만나주면 그때 내가 죽니 마니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알았어, 잠깐 볼게, 연락처 전해줘." 라며 흔쾌히 대답했다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앉아있다가, 핸드폰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다시 한번 지웠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