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by 서량 김종빈

"너 이제 어쩔 거냐?" 한욱이가 따지듯 물었다. "어쩌긴, 앞으로 1년이라는데 계속 찾아봐야지." 사실, 정말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조금이라도 미련이 있었다 싶었던 일들은 다 풀어보려고, 핑곗거리도 있고 좋잖아."

한욱이는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벌써 두 잔째 마시면서 입맛이 쓰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혼잣말처럼 물었다. "야, 누굴까, 아니 무슨 상황이었을까.", "뭐가?", "아니, 내 발병원인 말이야. 도무지 감이 안 온다."

정말 그랬다. 최근에 내가 누굴 열렬히 사랑하기라도 했다면 이 상황이 그나마 납득이 되었을 거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차여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면 그거구나 했을 거다. 근데 그런 것도 없다. 도저히 모르겠다.

"야, 전에 정말 괜찮구나 싶었던 친구가 있었거든, 그래서 그냥 호감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근데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는지 미안하다며 거절하더라.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났어." 내가 이야기를 하자 한욱이는 "그래서 그게 뭐?"라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좀 슬프더라. 거절당하거나 이런 게 슬프다기보다, 이제는 그 마음을 쉽사리 접을 수 있다는 게, 그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참 슬프더라. 예전처럼 아프고 힘들고 그러다 다시 매달리고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싶어 지는 게 좀 슬프더라." 한욱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커피만 마셨다.

이제는 전 같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아프다고 난리를 치던 시절도 지나긴 지나는 거였구나 싶어서, 그때는 왜 그렇게 아팠나 싶기도 해서 좀 서운했다.

"종빈아, 우리 현우가 벌써 6살이다." 한욱이는 갑자기 자기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이 녀석이 엊그제 길에서 돌에 걸려 넘어진 거야. 그래서 깜짝 놀라서 일으켜 세웠는데 울지를 않더라. 그래서 내가 물었어. "현우야, 안 아파?" 그랬더니 현우가 그러더라. "아파요, 근데 이제 6살이라서 안 울 거예요." 종빈아, 안 아픈 게 아니야." 한욱이는 커피를 다 마시고는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했다. 아들이 일찍 들어오라고 했다면서. 망나니 짓만 하고 다니던 녀석도 이제는 아빠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무슨 이유로 나는 병에 걸렸는지, 무엇으로 아프게 된 건지 생각했다. 지하철 2호선 특유의 요란한 덜커덕 소리가 어쩐지 예전의 아팠던 그 시절 같아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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