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짱을 낀 채로 방 한가운데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다. 병원을 다녀오고 난 뒤부터 계속 이러고 있었으니, 벌써 1시간은 넘은 것 같다. ‘아, 점심 먹어야 하는데, 점심 먹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는데 혼잣말만 해대는 것이 이제 상사병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힐끔하고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점심이 아니라 이제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냉장고를 뒤적거려보니 그래도 이것저것 있다. 냉동만두, 볶아놓은 지 꽤 된 김치 조금, 지난 주 반찬가게에서 사온 장조림, 인스턴트 스파게티 두 봉, 줄줄이 소시지 반 봉지, 햇반 3개. “음, 이정도면 내일까지는 문제없겠어.” 나는 다시 방 한가운데로 돌아가 누웠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또 누워서 천장에게 말을 건다.
아까 병원에서 그랬다. 나는 좀 이상하다고, 그래서 병도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의사선생님은 내게 내내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말했고, 나는 내내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들었다. “환자분, 저희도 지난 3주간 환자분의 증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증세는 누군가 한사람으로 발생한 병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상사병은 발생원이 명확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의 상사병은 신종이라고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검사결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병은 발병을 하게 만든 원인, 혹은 인물을 찾을 때까지 계속 된다는 겁니다.”
차라리 보통의 상사병이면 좋으련만 싶었다. 차라리 한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죽도록 사랑한 나머지 걸린 병이라면 그나마 모양새라도 좋을 텐데 말이다. 누군가, 혹은 어떤 상황이 내 상사병을 발병하게 했고, 그 누군가, 혹은 그 어떤 상황을 찾아 해결하기 전까지는 계속 예전의 사랑했거나 좋아했던 누군가를 찾아서 미련이라는 놈을 풀고 임시로 뇌와 신경계를 각성시켜야 한다는 거다. “이 무슨 거지같은...” 또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좀 웃기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내 예전의 사랑들, 연심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그 미련으로 점차 죽어 가는 줄 알고 원망도 했었다. 근데, 이제 와서 그게 아니란다. 예전의 사랑했던 미련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것으로 잠들 뻔한 뇌와 신경계가 깨어나는 거란다. 점점 잠들어가고 있는데, 옛사랑의 기억으로 잠을 깨우는 거라니,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었네.
이제 사랑이라는 게 뭔지 좀 알 듯했는데, 다시 또 모르게 되어버렸다. 해야 할 일이 늘었다. 하나는 그간 잠복해있던 이 병이 뭐 때문에, 혹은 누구 때문에 발병했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사이 계속 움직이려면 주기적으로 예전의 연인들이나, 좋아했던 사람들을 찾아 만나고 내가 잠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병원에서 내가 그에게 물었었다. “그럼 계속 예전의 연인들을 찾아다니면 이 병도 관리가 되는 거 아닌가요?” 그는 여전히 유감이라는 표정으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길어야 1년입니다. 비유하자면 환자분의 뇌와 신경계는 깨울 때마다 극도의 긴장상태가 됩니다. 놀라는 거죠. 그 덕분에 잠들지 않을 수 있는 거구요. 1년 넘도록 계속된다면 분명 망가지기 시작할 겁니다.”
나아진 건 딱히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바뀐 것도 딱히 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1년 정도는 충분히 버텨줄 만큼 있었고, 이래저래 1년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속 냉동만두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