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by 서량 김종빈

상사병에 걸리고 나서 좋은 점이 하나 생겼다. 참 웃기지, 죽을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싶지만, 죽을병이라서 좋은 것이 있다. 내가 친구들에게 그녀를 만나러 세렝게티에 간다고 하자, 친구들은 잠시 벙찐 표정을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타령 한참 라던 시절에 내게 “야, 미쳤냐? 사랑만 먹고는 못 살아. 사랑만 먹고 살 수 있는 여자도 없거니와, 너도 못 살아. 현실 좀 봐라.” 라며 다그치던 종헌이마저도 별 말이 없었다. 마지못해 “그래, 안 그러면 죽는다는데 가야지, 뭐.” 이러는데 좀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 정말 가는구나, 정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쩐지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래저래 19시간 정도면 된다고 하니, 그리 멀지도 않은 기분이었다.


“고별”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의 만남에도 생명이 있어. 어느새 조용히 숨 거두려 하네. 힘겹게 내쉬는 그의 숨결이 조금씩 약해져 가네.” 굳이 노래가 아니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사랑의 유통기한을 운운했고, 진심으로 만년이었으면 했다. 감히 영원을 바라지 않았고, 그저 만남의 생명이 내 수명보다 길었으면 했다.


근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 사랑을 거듭하면 쉬워질 줄 알았다. 요령이라도 생길 거라 믿었다. 하지만 쉬워지기는커녕 점점 모를 일들만 늘었고,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해서 잘 사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그토록 사랑한다 하고는 찰나에 끊어지는 연도 있었다. ‘연애는 정말 어렵구나.’ 라며 생각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누군가가 “결혼은 더 어려워.”라고 말했다. 그러니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게 된 거라고는 하나, “우리의 만남에도 생명이 있어.” 그리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두 갈래, “그 생명의 끝을 그저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끝끝내 끌어안고 좀 더 바라고 기도하는 것.”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끝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쿠바에서 돌아와서도 그녀가 생각나면 “아니야, 여행의 흥분이었어.”, 그러다가 또 생각이 나면 “요즘 내가 힘들어서 그래.”, 그렇게 여러 번 타이르기를 여러 해.


그 여러 해동안 나는 하지 않았다. 이 만남을 끌어안고 좀 더 바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만큼 온 것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예감하는 것들은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고, 이 만남은 이제 끝이 난다. 시작도 한적 없는 것 같은데 끝이 난다.


‘이런 식의 미련도 있구나, 이런 식의 끝도 있구나.’ 생각도 못했었다. 원래라면 그냥 알아서 끝나게 둘 것을 병을 핑계로 이렇게 끝내고자 하다니, 정말 생각도 못했다.


비행기가 이제 활주로로 나간다.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려고 켜보니, 문자가 와 있다. “종빈아, 탄자니아 술 사 와라.” 한욱이다. 다른 녀석들도 문자로 커피에, 마그넷 좀 사다 달란다. “걱정들 하기는, 누가 죽으러 가는 줄 아나, 살려고 가는 건데, 다 끝내고 살려고 가는 건데.” 나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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