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를 만난 것이 두 번, 차가 산을 넘다 멈춰 선 게 또 두 번, 복통을 앓은 것이 한 번, 길을 잃은 것이 또 한 번, 소 때가 차도를 가로질러 가느라 차가 멈춘 것이 네 번, 아니 다섯 번. 호객인지, 사기인지 모를 친구가 내 앞에 와서 혼자 한참을 떠들어대었던 게 한 열 번, 그리고 뭐가 있었더라.
이게 뭐냐면 내가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까지 오면서 있었던 일들이다. 비행기로 19시간을 걸려 탄자니아의 수도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다시 또 버스를 타고 13시간, 모시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하루가 좀 넘는 동안 있었던 일이었다. “야, 내가 여기까지 왜 왔을까?” 한욱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녀석은 괜한 소리만 답했다. “야, 사진 좀 보내봐, 거기 어떠냐? 좋냐?” 어째서인지 녀석은 나보다 훨씬 들떠 있었다. "지치네." 나는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또 혼잣말을 했다.
오늘 새벽에 수도에서 출발했건만, 도시에 도착하니 저녁이 다 되어간다. 나는 은형씨에게 받은 장소를 지도에서 찾아봤다. 한국인이 하는 식당이라는데, 꽤나 근사하다. 식당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검은 얼굴의 종업원이 내 앞에 수저받침을 놓고는 그 위에 정갈하게 수저를 놓았다. 뭔가 묘한 기분, 사실 한식이야 이틀 전에만 해도 먹던 건데, 뭐 얼마나 그리울까. 그럼에도 한식집을 찾은 것은 은형씨와 이야기하는데 조금은 익숙한 장소, 익숙한 상황이었으면 해서였다. 나는 그만큼 긴장해있었다.
식당에 앉아있으니, 주방장님이 나왔다. 한국인이 왔다고, 그게 누군가 했나보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분인데 여행 중이신가 봐요?”, “아, 네, 엊그제 막 넘어왔습니다.”, “어이구, 고생하셨네요. 근데 여긴 어떻게 찾으셨데요?”, “지인이 이 근처 사는데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요.”, “지인이라면, 누구?”, “이은형씨라고...”, “아~, 은형씨, 친구분이 오셨구나.” 한국인이 많은 곳은 아니지만, 세렝게티 여행자들은 다들 들리다 보니, 주방장님은 처음 보는 얼굴도 익숙하게 대했다.
“딸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녀가 들어왔다. “은형씨, 여기요.” 나는 이야기 중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어, 종빈씨~” 그녀가 활짝 웃었다. “어머, 여기까지 어쩐 일이에요.”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내 안부를 물었다. “그러게요, 일단 앉으세요.” 얼마 전에라도 봤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녀에 반해 나는 뭔가 어색했다. 거리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놈의 거리감 핑계를 대는 동안, 그녀는 주방장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럼 좋은 시간들 보내세요.” 주방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돌아갔다. “종빈씨, 정말 어쩐 일이에요. 여기까지, 가까운 곳도 아닌데.” 여전히 거리감을 못 찾고 있는 나를 두고 그녀가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그녀는 내가 반가운 건지, 궁금한 건지, 계속해서 안부를 물었다.
“아, 그럼요. 아무 일 없어요. 정말 그냥 여행하려고 왔어요. 기린도 보고, 코끼리도 보고 하려고 온 거예요.” 할 말은 많았지만, 모아둔 이야기는 한가득이었지만, 나는 별일 없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그녀는 내 싱거운 말에도 뭐가 좋은 건지 막 웃었다.
갑자기 목 아래가 근질근질하다. 큰일이다. 그녀가 밝은 얼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걸 보자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나마 아주 조금 있던 자신이 없어졌다. 뭔가 끝내고, 매듭지을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