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by 서량 김종빈

“여기 맛있죠? 주방장님이 여기 돼지고기로 만드신 거예요. 여기 돼지가 말라서 지방도 없어요. 게다가 살도 질긴데, 그걸 1주일 내내 숙성시켜서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또 김치는...” 그녀는 반찬을 하나하나 찝어가며 내게 설명을 해줬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재잘재잘, 보고 있자니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반찬 이야기를 한참이나 이어가는 동안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지, 어떻게 말을 하지, 아니, 말을 해야 할까.’ 웃기는 일이다. 나름의 매듭이라는 걸 지겠다고 여기까지 온 거다. 그것도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도 애매한 이 시기에 억지를 부려가며 말이다.

근데 정작 그녀를 앞에 두자, 망설이고 있다. 그리고 실감하고 있다. ‘아, 나는 그때부터 그녀를 좋아했던 거구나. 여행의 흥분감이나, 일상에서의 일탈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나는 그녀를 좋아했던 거구나.’ 이렇게 다시 실감하고 나자, 목이 메었다. 아직 우기는 멀었다는데, 무겁고 습한 공기가 내 옆에 내려앉았다.

“음, 음, 은형씨.”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바로 앞에 있는 그녀를 또박하게 불렀다. “네?”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한참을 재잘거리는 것을 멈췄다. 주방의 물소리, 가게 밖 도로로 차가 지나는 소리, 종업원이 수저를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 그녀가 말을 멈추자 남은 소리는 그 정도밖에 없었다.

“제가 왜 온 것 같아요?” 나는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그 중간쯤의 표정을 지어가며 물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 동그란 눈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아, 또 이 표정이다. 이 눈, 저 입꼬리.’ 나는 그녀의 이런 표정을 좋아했었구나.

“세렝게티 보러 온 거 아니에요?” 그녀가 되물었다. 이제 내 차례다. 시간이 늘어지고 늘어져서 한 없이 길어지는 기분, 이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 늘어지고 늘어져서 오늘까지 온 시간을 이제 놓아야 하는데, 목 언저리에 말이 걸려있다.

“그렇... 죠? 세렝게티 보러, 기린도 보고, 품바도 보고, 바오밥나무도 보고, 그리고 은형씨도 보고?” 겨우 끄집어낸 대답이 이거다. ‘등신, 멍청이, 쪼다, 에라이 바보 같은 놈.’ 이래서였구나. 이래서 내가 그렇게 걸리기 힘들다는 상사병에 걸리고, 거기에 보통은 낫는걸 이렇게 죽니 마니 하는 게 이래서였어.

“에이, 그게 뭐예요~.” 그녀는 김이 샜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았다. 덩달아 나도 맥이 풀려버렸다.

밥을 다 먹고 세 블록 너머의 그녀 집까지 가볍게 걸었다. 그녀가 신은 샌들이 흙길 위를 지날 때마다 아주 작게 먼지가 일었다 앉았다. “은형씨, 저 세렝게티 다녀와서 차 한잔 할래요?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그래요, 시간 비워놓을게요. 여기 커피 정말 맛있는데 있어요.”

그랬지, 그녀는 커피를 참 좋아했지. 그리고 나는 그녀가 커피 마시는 걸 보면 그게 괜히 보기 좋았고. 내게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나 시간을 호사스럽게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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