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너에게.
나에게 이글이 어떤 의미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하며 어수룩하나마 글자를 얼마 적는다.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좀 더 자유롭고, 보다 따듯한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
세상은 뜻대로 안 되고, 사람은 온통 뭐가 뭔지 모를 삶이지. 하지만 그런 어려움은 변명 삼기에 부족하고, 우리는 그런 어려움으로 주저앉을 이들이 아니라서, 나는 기대하는 거야. 우리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녀석이니까, 바라고 원한다.
건강해라. 아프지 마라. 너의 양심을 찾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의롭고, 때로는 사랑이라 불리면 좋겠다. 1년 뒤의 나에게, 너에게 오늘의 나를 보낸다.
우리가 길을 잠시 잃거든, 너무 두려워 말아라. 그 길은 결국 이어지고 이어져서 제자리를 찾을 테니까. 만일 정말로 힘이 들거든 견디지 말고, 버티지 말아라. 그렇다고 내팽개치거나 관두지도 말거라. 그저 가만히 두자. 흐르고, 돌아나가다, 어딘가에 머물기까지 그저 가만히 흐르게 하자.
1년 뒤에도 너의, 아니, 우리의 이 삐뚤한 글씨는 여전해서 낯설지 않겠지만, 부디 좀 더 나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낯선 내가 되어 있기를, 그 낯설음이 반갑고 기쁘기를.
2018년 4월 26일 기대와 위로를 보내며 김종빈 드림.」
오늘 아침 1년 전 나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사실 정말 기억도 나지 않아서, 편지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았고, 편지가 있었다는 사실마저 가물가물해가고 있었다. 그래도 기억하는 것은 그다지 정성껏 쓴 편지가 아니었다는 것.
군에 있던 시절, 몇 번의 유서를 썼고, 가족들, 연인, 친구에게 편지를 남겼다. 당시는 나름 심각한 상황이라서, 정말 이게 이 세상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겠다는 심정으로 썼었다. 그러나 매번 살아 돌아왔고, 그 덕분에 나는 나의 유서와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직접 읽는 민망함을 온몸으로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그러니, 1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적당히 쓰려고 했다. 1년 뒤의 내가 덜 민망하고, 덜 부끄럽도록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다 보니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이 안 났는데, 편지를 받아보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반은 명령조에, 횡설수설이지만 그래도 누가 볼까 봐 당장 구겨서 삼킬 것은 아니었다.
길지도 않은 편지, 나름 담담하려고 노력했던 당부와 같던 이야기들. 다 읽고 나니, 답장을 쓰고 싶어 졌다. 답장이라고는 하지만 편지를 쓴다기보다 그냥 짤막한 수다를 떨고 싶어서 지금의 나 역시 몇 자 적어본다.
「1년 전의 나에게,
여기는 겨울이 한창이다. 어디서 편지 보내 줄 사람도 없었는데, 덕분에 일요일 아침이 심심하지는 않았네.
사실, 이렇게 몇 자 적어보려니 미안한 마음이 좀 있네, 1년 전 나는 내게 꽤 기대를 걸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볼품이 없는 나라서 그게 좀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 그러니까 정말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으니 실낱같은 희망은 가져보기를 권한다.
먼저는 나쁜 소식부터,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어. 너도 알고는 있었을 거야. 1년 사이에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겠어? 쉽지 않더라. 선한 사람, 매 순간 양심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 이해하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 그런 일들은 너무나 어려워서 오히려 주눅이 들 정도란 말이지.
나는 여전해. 누군가를 싫어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러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런 것들은 여전하지. 또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나를 무서워하고, 하지만 대부분은 내게 관심이 없지. 그것도 여전해.
그리고 글에 대한 것, 신춘문예에서 떨어졌다. 나름 그래도 애써가며 쓴 이야기였는데도 역시 내게 재능은 없었구나 싶더라. 게다가 그 사이 또 발작이 일어나서 그간 써왔던 이야기들을 전부 다 날렸어. 어때 여전하지? 이 놈의 열등감과 발작은 한결같아서 정이 들 정도지.
그렇게 나는 볼품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거지.
자, 여기까지가 나쁜 소식. 이제부터는 좋은 소식을 좀 이야기 해 볼까.
제일 먼저, 콘트라베이스. 그렇게나 배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이제는 활을 켜기도 하고, 현을 퉁기기도 하면서 그럴싸하게 연주를 해. 엔리오 모리꼬네나, 퀸의 노래 그리고 스탠바이 미까지 할 수 있게 된 거지. 여행 중에 무작정 거리악사들 사이에서 퍼커션이나 뚜들기던 때랑 비교하면 뭔가 좀 있어 보이게 된 거지.
둘째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 고작해야 쓸 수 있는 게 질 낮은 일기가 전부냐면서 매번 좌절했었잖아. 근데 드디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 비록 없던 재능이 솟아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써보려고 그래. 또 모르잖아, 살다 보면 정말 괜찮은 문장 한 줄 정도는 자아낼 수 있을 지도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현실을 좀 살아보려고 해. 그만 도망치고, 그만 싸우고, 다시 또 타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볼 생각이야.
나는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좋은 사람도 많이 얻었어. 어떤 사람을 멀리하고, 어떨 때 싸워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어렴풋 알 수 있게 되었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간신히 알았다는 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졌다는 말이야.
여전하지만 조금은 나아졌으니, 앞으로도 기대는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야. 확 변해서 낯선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라는 소리.
“세상은 뜻대로 안 되고, 사람은 온통 뭐가 뭔지 모를 삶이지. 하지만 그런 어려움은 변명 삼기에 부족하고, 우리는 그런 어려움으로 주저앉을 이들이 아니라서, 나는 기대하는 거야. 우리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녀석이니까, 바라고 원한다.” 네 말마따나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날이 좋아 볕에 빨래를 좀 말려야 해서 이만 쓴다.
2019년 7월 14일, 네가, 그리고 내가, 꾸준히 계속하기를 바라며 따리하에서 김종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