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에서 삼일밤을 보내고 마지막 날 아침을 맞았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야영지 주변을 걸었다. 마치 구름 속에 있나 싶을 만큼 안개가 가득했다. 혹여라도 구름이 흩어질까, 천천히 걸음을 디뎠다. 구름이 다 흩어지면, 안개가 모두 걷히면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할 말들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겠지.
천천히 발을 옮기고 있는데, 커다란 나무 아래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저 두 사람도 이 여행을 끝으로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지. 어떨까, 저 두 사람은 현실로 돌아가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잘은 몰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형님!”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꾸벅하고 웃으며 인사만 했다. 두 사람의 풍경을 흐리고 싶지 않아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다시 텐트 안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나와보니 해가 쨍쨍하다. 구름은 다 사라지고, 오늘이 왔다. 나는 두 사람과 갈길이 달라서,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두 사람을 찾았다. “나흘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두 분 다 참 보기 좋아서 여행이 내내 기분 좋았네요.” 그러자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형님 덕분에 저희가 즐거웠죠.” 나는 그 두 사람에게 한국에 돌아가면 밥 한 끼 같이 하자고 하고는 돌아서는데, 두 사람이 내게 말했다. “형님, 다 잘될 거예요.”
나도 주책이지. 세 번의 밤이 무료하다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 온 이유까지 다 하고 말이야. 그들은 내 병에 대해서만 모르지,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건지는 다 알아서 저렇게 응원하고 있는 거다. 그들의 말처럼 다 잘되기를 바란다.
도시로 돌아가는 길, 차는 올 때 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국도라는 게 흙만 다져놓은 비포장 도로에 왕복 1차선이라서 차가 한번 막히면 다른 방도가 없는 거다. 하지만 그 덕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망설일 시간도, 결심할 시간도 충분했다.
아침에 출발한 차는 오후 네시가 다 되어서 도시에 도착했고, 나는 그녀에게 내가 도착했음을 메신저로 알렸다. 저녁 식사는 둘 다 생각이 없어서 건너뛰고, 그녀가 맛있다고 칭찬하던 카페에서 이따가 만나기로 정했다. 어중간하게 남는 시간, 도시라고는 하지만 시골 읍내 같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혼잣말을 해본다.
“그거 알아요? 내가 은형씨 좋아했던 거.”, “음, 그거 혹시 알고 있었어요. 내가 은형씨 꽤 오랫동안 좋아했었던 거.”, “음, 은형씨, 조금 웃긴 이야기 하나 들어볼래요? 제가 은형씨 좋아했었잖아요, 지금 말고 예전에, 예전.” 혼잣말을 하는 데도 자꾸 목이 잠긴다. 장시간 차를 타고 오면서 한 마디도 없이 와서 그런가, “음, 음.” 목을 계속 풀어본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혼잣말을 하며 마을을 빙돌아오는 사이에 카페 앞에 도착했다. 나는 미리 들어가 테라스 안쪽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녀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싶었다.
'아, 참 이뻤는데.' 그날 비행기 통로로 걸어오던 그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