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by 서량 김종빈

“종빈씨, 세렝게티는 어땠어요? 좋았어요? 나도 바빠서 아직 못 가봤는데, 종빈씨가 먼저 가다니, 정말 모를 일이다. 그쵸?” 그녀는 어느새 카페의 길지 않은 복도를 따라 자리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내게 아무렇지 않게 감상을 물었다.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그제도, 엊그제도 계속해서 만나왔던 것처럼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이제야 알게 된 건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풍경이 있다. 커다랗고 빨간 풍선이 파란 하늘 위로 떠 간다. 하얀 구름을 스치듯 지나서 하늘을 건넌다. 그녀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저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서, 뭐 봤어요? 기린? 코끼리?” 내가 그녀의 풍경을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더니,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 그냥 많이 봤어요. 그럭저럭 다 본 것 같아요.” 내 성의 없는 대답을 듣더니 그녀가 입을 조금 삐쭉거린다. “은형씨, 제가 여기 왜 온 것 같아요?”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또, 또.’ 그녀는 매번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듣는다.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묻는다. 어떻게 이런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린도 보고, 코끼리도 보려고 왔다면서요.” 그녀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기린도 보고, 코끼리도 보려고 왔어요. 그리고 은형씨를 보려고 왔어요.” 파란 하늘을 건너던 빨간 풍선이 자리에 멈춰 섰다.


“은형씨, 좋아했었어요.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좋아했었어요. 그것만은 분명해요.” 혼잣말 삼아 연습할 때는 몇 번이고 해 봐도 입에 익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쉽게 나오다니 스스로도 놀랐다. 둘 다 눈이 동그래져서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종빈씨,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사실,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은 해봤었어요. 근데, 그냥 그때도 지금도 마음에 여유가 없어요. 종빈씨가 싫고 좋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지금은 나 외의 다른 사람은 생각하는 게 벅차요. 그래서... 그러니까...” 그녀는 죄인마냥 사과했다. “은형씨, 고마워요.”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의 난처한 표정을 계속 보고 싶지 않았다. “은형씨, 정말 고마워요. 은형씨에게 다른 이야기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에요. 그냥 그랬었다고, 그래서 나는 좋았다고, 그게 고마웠다는 말 하고 싶었어요.”


“아, 속이 다 시원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털어놓을 걸, 이게 뭐야, 은형씨 찾아서 이런데까지 오고, 무슨 고생이야.” 나는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 풋...” 그녀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종빈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저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밥 한번 먹어요.” 그녀의 표정이 다시 생기를 찾았다. “글쎄요, 그건 모르겠네요. 그때 만나는 사람 있으면 안 되겠는데요.”,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는 그날 카페가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를 나와 다시 또 세 블록은 걸어 은형씨 집 앞에 다다랐다. “은형씨, 아프지 마요. 끼니 잘 챙겨 먹고, 항상 조심해서 다니고.” 내 잔소리 같은 당부에 그녀가 웃으며 대답한다. “종빈씨도 아프지 마요. 고마워요.”


그녀가 파란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프지 말아야지.’ 그녀의 말처럼 아프지 말아야겠다. 정말 아프지 말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