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것도 사랑이 맞냐?”, “글쎄다, 근데 좀 애매하기는 하다.”, “그치,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이걸 사랑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야, 그런 애매한 마음으로 가면 상사병에도 별 차도가 없는 거 아니야?”, “아니, 근데 그냥 막 신호랄까, 그런 게 왔거든, 왜 그런 거 있잖냐, ‘아, 보러 가야겠다.’ 하고 말이야.”, “나는 그놈의 상사병이라는 게 아직도 뭔지 이해는 안 가는데, 네가 사랑이라 느꼈으면, 그게 미련이 되어있으면, 사랑 맞지 않겠냐?”, “맞다, 네 말이. 사랑에 무슨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겁이 났나 보다.”
탄자니아로 오기 전 날, 한욱이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참 어이없는 것이 상사병으로 죽는다는데도 그보다는 다른 게 더 걱정이었다. ‘만일 그게 정말 사랑이 아니었으면 어쩌지, 그냥 혼자 착각에 빠져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면 어쩌지.’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발병해서 죽는가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녀를 만나고 보니 사실은 사랑 같은 감정이 아니라, 착각이었구나 하게 되면 뭔가 엄청 서러울 것만 같아서 그게 더 겁났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를 만나고 다시 돌아가는 길, 그래도 잘했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위로가 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은 해봤었어요.” 그녀에게 마음을 제대로 전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고, 너무 많이 망설였고, 그탓에 무수한 순간들을 놓쳐서 여기까지 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래도 그 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녀가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조금은 생각해 줄 만큼은 나도 뭔가를 했었구나 싶어서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12시간이 걸려서 수도에 도착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놈의 미련이란 거, 그런 것들이 풀리기는 했나 보다. 이제 스스로도 뭔가 좀 알 것 같았다. 이놈의 상사병이라는 게 어떤 건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그녀 덕분인지, 아니면 그녀의 아프지 말라는 말 덕분이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녀 덕분이었다. 한동안은 또 아프지 않겠지. 아프기는커녕 여독이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쾌청한 기분이다.
“한욱아, 나 왔다.” 도착하자마자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드르륵, 드르륵”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답문 대신 전화가 왔다. “야, 종빈아, 다녀오느라 고생했다. 너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되냐?” 한욱이는 담백한 투로 물었다. “뭔데? 무슨 일 있나?” 평소 같으면 농담조로 “술 사 왔냐?” 같은 이야기를 먼저 할 텐데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아니, 큰일은 아니고, 아니, 큰일이 맞지, 아, 그게 그러니까, 오늘 종헌이랑 셋이서만 좀 볼 수 있냐?” 한욱이는 저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아, 뭔데? 나는 술도 잘 못 먹는데, 셋이서만 보자고 하냐?” 나는 실실거리면서 되물었다.
“종헌이 파혼했다. 정확히는 파혼당했다.” 한욱이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공항에서 멈춰 섰다. “어, 몇 시에 보냐? 종헌이는 나오겠데? 아니, 일단 나오라고 해.” 결혼 한 달을 남기고 청첩장까지 다 돌려놓고서는 이게 무슨 일이냐, 참,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