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by 서량 김종빈

“야, 미안, 내가 좀 늦었다. 종헌이는?”, “글마, 잠깐 화장실 갔다.”, “뭔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나도 잘은 몰라, 그냥 이 새끼가 어젯밤에 나한테 전화해서는 지 파혼당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보자고 했지. 전화로 물을 수는 없잖냐?”, “뭔 결혼 한 달 앞두고 그랬데, 혼수 문제야?”, “그건 아닐걸, 그래도 집은 종헌이가 다 했잖냐, 그건 아닐걸.”, “아, 씨발, 뭐야?”, “아, 나도 몰라, 오니까 이미 지 혼자 마시고 맛탱이 가있더라.”, “옘병.” 우리는 이걸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위로는 또 어찌해야 하나, 끙끙거리고 있었다.

“어~어~어, 종빈이! 왔나? 왔네? 나 보러 왔나?” 종헌이가 잔뜩 취해서는 저 앞에서 나를 불렀다. “저거, 진짜 맛탱이 갔네. 저거 무슨 말이나 할 수 있겠나?” 내가 한욱이에게 걱정스레 묻자, 한욱이는 딴 곳을 보면서 혀를 찼다. “종빈이~종빈이~우리 씨발, 사랑꾼 종빈이~” 평소의 종헌이라면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은 20년 동안 알아오면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 그래, 그래, 종헌이 많이 마셨나? 와서 앉아라.” 나는 어이없는 웃음으로 대꾸를 했다. “종빈아, 야, 김종빈, 사랑꾼, 씨발 사랑 9단, 사랑이 뭐냐?” 종헌이가 가게 안에 다 들리도록 큰소리로 내게 물었다. “킄, 이 미친놈, 오늘은 이 새끼가 개그를 치네, 진기한 장면이다. 자, 그래서 사랑 9단 김종빈님, 사랑은 뭔가요?” 한욱이가 지가 먹던 숟가락을 내 앞에 갖다 대며 물었다. “아, 내가 진짜 이런 수치까지 당하는구나. 이 발랄하게 미친놈들아.” 나는 한욱이가 들이민 숟가락을 밀어냈다. “종헌아, 여기서는 그만 먹고 집에 가자. 일단 집에 가서 더 먹던가 하자.” 나는 종헌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야, 씨발, 김종빈, 사랑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고, 씨발 그런 거 다 착각이야, 그냥 씨발 쫌 그만하라고, 사랑 타령하는 새끼들아.” 종헌이는 고개를 떨군 채 소리쳤다. 나도 한욱이도 벙찐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못하고 서로만 쳐다봤다. 가게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야, 이종헌, 너 취했어. 야, 집에 가자.” 한욱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야 종빈아, 미안하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나 보다.” 한욱이는 정색하고는 내게 사과를 했다. “아니다, 니들은 더 있어라, 종헌이가 이대로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나 먼저 들어갈게, 종헌이 좀 잘 챙겨라.” 종헌이는 내가 내일이나 해서 따로 연락할게. 나는 한욱이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야, 종빈아, 진짜, 사랑이 뭐냐고~, 넌 알 거 아니야? 너는 너무 사랑해서 죽는다며, 죽을 만큼 사랑했으면 알 거 아니야? 좀 알려달라고, 씨발, 제발 좀 알려달라고.” 종헌이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야, 이종헌, 그만하라고. 그게 할 말이야?” 한욱이가 역성을 냈다. “야, 됐다. 나 갈게. 지도 속이 속이 아니겠지. 이 새끼, 술 깨면 나한테 전화 좀 하라 해라.” 나는 서둘러 가게를 나왔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사랑이 뭐길래, 다들 그걸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러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다들 알게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차마 종헌이에게 하지 못한 대답을 길에 흘려두고 버스에 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