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종헌이에게 마음이 쓰였다. 지금까지 결혼까지 가본 적이 없으니 파혼을 해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기껏해야 연애하다 헤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그 조차도 내게는 정말 아픈 일이었지만 파혼이나 이혼에 비하면 그래도 가볍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 종헌이가 그 난리를 치는 걸 보니, 새삼 이게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내 주변에 이상한 녀석들 중에 종헌이는 그래도 침착하고 합리적인 편이었다. 가끔은 뭐 저렁게 냉정하냐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녀석이 어제 그 난리를 친 거다. 게다가 파혼 “했다.” 가 아니라, “당했다.”라는 말도 걸렸다. 보통 그런 표현은 뭔가 피해를 입었을 때 하는 건데, 대체 무슨 일인지.
“드르륵.” 식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자를 보니 종헌이다. “종빈아, 어제 잘 들어갔냐? 오늘 별일 없으면, 점심이나 같이 먹자. 내가 니네 동네로 갈게.” 이런 점이 녀석답다. 아마 직접 만나서 사과하려는 거겠지. 매번 적당히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 녀석,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것들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녀석, 종헌이는 그런 녀석이다. “그래, 굴국밥 맛있는 데 있다. 온나.” 답장을 하면서도 녀석이 걱정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오늘을 들을 수 있을는지.
점심때가 되어 국밥집에 들어가니 종헌이가 먼저 와있다. “어, 일찍 와 있었네. 회사는?”, “오늘은 쉰다.”, “속은 좀 괜찮냐? 뭔 술을 그렇게 마셨냐?”, “그러게 말이다. 종빈아, 어제 미안하다.”, “됐다. 나 죽으면 3일 내내 니가 육개장 날라라.”, “미친놈, 니가 왜 죽어.”,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킄.”, “미안하다, 그냥 좀 화가 나는데 어디다 풀 데가 없더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야, 일단 주문부터 하자. 이모님~”
종헌이는 주문을 하고는 조용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종빈아, 사랑이라는 게 나는 그냥 서로 필요한 거 적당히 맞춰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영이랑 결혼하기로 한 것도 서로 결혼할 때도 되었고, 2년 정도 연애해보니까 크게 튀는 거 없고,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지. 그래도 내가 벌이는 좀 되니까,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정말 서로 이 정도면 필요한 거 맞춰주며 살겠구나 했어. 근데, 지영이가 3일 전에 나한테 그러더라. 자기가 지금 이런 말 하는 게 미친 소리인 거 아는데, 자기 결혼 못하겠다고 그러더라. 오빠 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러면서 지도 미안한지 우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무슨, 그런 뭣 같은 경우가, 아니, 아, 와, 아니, 그게 갑자기 뭔데, 아니, 그래 지영씨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나는 헛웃음만 연거푸 뱉었다. “어제 너희 만나기 전에 한번 더 물어봤다. 전에 만나다 헤어진 남자친구라더라.” 종헌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야, 너랑 2년을 사귀었는데, 그전에 만나던 사람이라고?” 내가 흥분해서 묻자 종헌이는 고개만 한번 느리게 끄덕였다.
종헌이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부족한 게 있으면 노력하겠다고 했더니, 걔가 그러더라. 오빠 잘못 아니라고, 자기 잘못이라고, 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외로워서 나를 만나기 시작했는데, 내가 잘해주니까, 그냥 이게 맞는 건 줄 알고 살았다고 그러더라. 근데 결혼 3개월 앞두고 전 남자친구가 연락했데. 자기 결혼한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면서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다더라.” 어느새 식탁에 굴국밥이 올라와 있었다. “야, 일단 먹자, 속 쓰리다.” 종헌이는 숟가락을 들며 말했다. 녀석은 마치 반쯤은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굴었다.
“참 모를 일이다. 지영씨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럴 줄은 몰랐네.” 나도 딴 세상 이야기인 것처럼 한마디 거들고는 숟가락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