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여행기 10.

by 서량 김종빈

아마 지난 12월쯤이었을 거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우유니에 갔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감동을 받아서 한껏 들떴었는데, 그게 좀 과해서 살짝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다들 우유니 한번 놀러 오세요. 볼리비아로 놀러 오시면 제가 안내할게요."

코이카의 어느 기수나 단체 대화방이 하나 정도는 있듯, 121기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그 대화방에 무턱대고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

사실 속으로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설마 오겠냐? 이 먼 곳 볼리비아까지 와서, 거기서 또 해발 4천 미터의 허허벌판까지 꾸역꾸역 오겠나, 더 좋은 곳도 많은데." 이런 생각 덕분에 나는 부담 없이 장난을 칠 수 있었다.

"우유니, 정말 이쁘죠? 나만 보는 게 참 아쉽다. 다들 오시면 좋을 텐데." 이런 말도 서슴없었다. 아쉬움보다는 자랑이었다. '이거봐라, 우유니다, 니네들 나라에는 이런 거 없지?' 같은 거랄까.

그렇게 12월 우유니 여행이 끝나고 올해 1월이 되도록 자랑을 했었다. 평소라면 집 안에만 있는 집돌이가 자랑할 만한 여행이 그뿐이었으니 우려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화방에 3월부터 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21기 동기들이 우유니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코이카 단원에게는 임기 1년이 지나면 국외 휴가가 가능한데, 중남미에 있는 동기들이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

예전에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의 보컬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에게 허세를 부리기 위해 "나는 기타를 칠 줄 안다. 밴드도 하고 있다."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거짓말 이후 부랴부랴 기타를 배우고 밴드를 결성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다들 우유니 한번 놀러 오세요. 볼리비아로 놀러 오시면 제가 안내할게요." 12월에 내가 한 말이었다. 하는 것은 없는데 부담이 좀 되었다. 이를테면 '아, 우유니가 그때 풍경이 예뻐야 하는데, 별은 쏟아질 듯 떠있어야 할 텐데, 너무 추우면 안 될 텐데, 고산증에 누가 아프면 안 되는데, 컵라면은 좀 가져가는 게 좋을까, 혹시라도 오는 길에 문제가 없어야 할 텐데.'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7월이 되자, 하나 둘 여행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페루까지 오고, 볼리비아 라파스에 들어와서는 드디어 우유니에 모였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어 모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만 그래도 8명.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페루, 파라과이, 그리고 볼리비아. 6개국에서 알뜰히도 모인 우리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모여서 뭘 했냐면 그냥 별 것 없었다. 어제 만났던 것처럼 함께 밥을 먹고, 술도 좀 마시고, 실컷 수다를 떨고, 함께 우유니를 여행했다.

다만 조금 유별났던 것은 서로 좀 많이 반가워하고, 우유니의 풍경에 좀 많이 호들갑을 떨며 감격했었고, 달리는 차 안에서도 신나게 노래를 불러가며 흡사 꼬마 아이들 소풍길보다 더 붕붕 떠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정신없이 2박 3일을 함께 보내고 다시 또 각자의 여행지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날,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뭔가 섭섭한 기분.

나름 담백하게 인사한다고 했는데, 섭섭해하는 게 티가 났으려나 모르겠다. "건강히 있다가 1년 뒤에 다들 한국 여행에서 다시 만나요."라고는 했지만 그 작별 인사부터가 담백하지 못했나 싶기도 하고 말이야.

어쨌거나 그렇게 모두들을 보내니 조금 외로운 기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은 언제나 우리를 서로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약간의 외로움을 남겨두었구나.'

나는 외로움이란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약함, 결핍, 그런 것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만 같아서 조금 초라하고 비참한 기분마저 드니까. 할 수 있다면, 언제나 혼자서 씩씩하고 싶었다.

근데, 어쩌면, 그래 어쩌면. 그리고 가끔은, 정말 가끔은 외로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으로 우리가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면, 하여 조금 더 오랫동안 서로를 기억하게 한다면, 외로움은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일 테다. 이번처럼 말이다.

지난밤, 오랜만에 만나 나눈 소소한 이야기들 속 예전의 이야기들, 아직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어도 까마득히 잊지는 않아서 밤을 더듬어 우리를 찾는 사람들.

사실, 다시 생각해봐도 대단한 것도 없는 여행이었다. 그저 몇몇이 모여 관광지를 돌아본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래, 별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이었지.

그럼에도 나는 여행 내내 혼자 들떠서 헛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서, 어이도 좀 없어서, 무엇보다 실감 나지 않아서, 여행 중에 종종 헛웃음을 흘렸다.

우유니가 아무리 아름답다지만, 그 풍경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라지만, 내게는 이 여행에 모인 몇몇이 더 비현실적이어서 말이지.

도미니카공화국,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페루, 파라과이, 그리고 볼리비아. 모두들 우유니에서 한참 여행 중일 때, 혼자서 꼼지락거리며 지도를 봤었는데 대충 1만 킬로를 넘어가더라. 이곳까지 온 모두의 이동경로가 말이다. 정말 비현실적이었던 건 우유니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였겠지.

나는 헛소리를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그런 헛소리가 차츰 이루어져 갈 때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게는 이번 여행도 참 각별했다.

지금이야 우유니 여행이 끝나고, 모두들 각자 일상으로, 각자의 나라로 다시 돌아가 있지만 언젠가 우리의 외로움이 다시 또 우리를 서로에게 인도하리라 기대해본다.

정말이지, 가끔은 이런 소소한 외로움, 적당한 그리움은 축복이었다.

* 우유니 이야기는 급히 마칩니다. 계속 써보려고 했지만, 그날의 이야기들을 다 표현해낼 단어와 문장이 제게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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