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잡아가려면 군함 정도는 끌고 오세요. 영장하고.

볼리비아 전기전력 김종빈

by 서량 김종빈

예전에, 그러니까 정말 혈기를 주체 못 할 때, 소위 볼품없는 아저씨들이 술자리에서 말하는 왕년, 그 왕년이 내게도 있었다. 친구가 맞는 걸 막는다고, 어쩌다 패거리들 다툼에 휘말려서, 내 연인이 모욕당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경찰분들께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지라 별 탈 없이 풀려났었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라도 정당화되지 않는다지만, 그때는 제 멋에 취해서 폭력에 기준을 세웠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싸운다.”, “나보다 약하고 어린 사람들은 관대하게 대한다.”, “여자는 절대로 손끝도 건들지 않는다.” 지금 보면 누군가를 한껏 부수고 찢어버리는 일에 기준이니, 명분이니 있어봤자지만 말이다. 유치하게도 그때는 제멋에 한껏 취해있었다.

심지어 나쁜 일 하시는 분들에게 함부로 덤벼들었다가, 형사계가 아니라 강력계에 불려 간 적도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목숨 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손을 썼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이제 놀림거리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우스갯소리로 “야, 그때 종빈이, 좋나 멋있었어. 눈 돌아가서 욕이라고는 무슨 무슨 새끼밖에 못하는 놈이 사람은 죽어라 패는데, 안 말렸으면 사람 죽였을 걸.”, “그치, 종빈이, 이 새끼 지금 어엿한 사회인으로 사는 건, 모두 다 말려준 우리 덕이지. 그러니까 오늘은 니가 사라.”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참 겁이 많았구나, 그리고 여유가 없었구나, 오만했구나.” 말이 안 통하고 폭력부터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건 말이 안 통하니까 사람이 아니라 짐승새끼야, 짐승새끼는 패서 가르쳐야지.”라는 말을 당당히 했으니 얼마나 오만했던가 싶다. 그리고는 나도 폭력에 기대어 같은 짐승으로 신나게 낮아지던 시절.

지금이라고 얼마나 나아졌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비하면 덜해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에게 불신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정말 싫었다.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를 혐오하고 다그치는 것이 만성이 되어가던 중 어제,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어제 나는 “납치, 인신매매, 매춘” 의 용의자로 신고가 되어 경찰서에 다녀왔다. 심지어 한국도 아닌 볼리비아에서 말이다. “특별 범죄 수사대” 형사 2명과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델타팀 군인 4명, 별 기운도 없는 동양인 아저씨 하나를 잡아가기 위해 한밤 중에 바쁜 걸음을 하신 분들이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나와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던 한 여대생의 부모가 자신의 딸과 네다섯 시간 정도 연락이 안 되자, 딸의 행적을 수소문했고, 그 와중에 우리 집까지 와서 내게 행방을 물었는데, 나는 그 친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냥 적당히 “어디로 간다던데? 잘은 모르겠어.”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그 여대생의 아버지는 내 핸드폰을 빼앗고, 여대생의 어머니는 특별범죄수사대에 신고하고 지역방송에 실종신고까지 접수하는 사달이 난 것이다.

그러니까 난 이미 범죄자로 굳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온 동네에 소란이 일어서 주민들까지 다 나왔다. 근데 또 여기서 재미있는 게, 동네 주민들이 나를 두고 “이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라며 변호를 해주는 덕분에 동네는 더 시끌시끌. 또 그 와중에 형사님은 알아듣지도 못할 속도의 스페인어로 미란다 원칙 같은 걸 읊고 말이야.

이후 시간이 좀 지나서, 서에서 조서를 꾸미는 중에 오해가 풀렸다. 딸은 전화가 안 되는 지역을 밤 버스로 지나다 보니 연락이 안 되었던 것뿐이었다. 결국, 나는 피해자가 하나도 없는 납치 및 인신매매의 용의자로 꽤 유쾌하고 색다른 밤을 보냈다.

이런 해프닝이야 뭐 있을법하다. 근데 말이다.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바로 나란 놈. 본래의 나라면, 억울하고 분해하며 난리를 쳤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의미로 내 예상을 시원하게 져버린 내가 있었다. 눈 앞에서 자기 딸이 납치되었다고 오열하는 엄마를 봤다. 내가 혹시라도 핸드폰으로 공범에게 연락할까 싶어 안간힘을 써서 내 핸드폰을 뺏으려던 아버지도 봤다. 그리고 연행되는 와중에도 당신들 딸은 괜찮을 거라고, 문제없을 꺼라며 두 사람을 달래고 위로하는 나를 봤다. 물론 두 사람에게 범죄자로 보이던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별 위안은 안 되었겠지만.

내 억울함이나 분보다, 그 두 사람의 절박함과 애가 끊어지는 울음이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말이다. 놀라운 일이다.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사실 좀 서운했다. “피부색이 같았더라도, 내가 볼리비아 사람이어도 이렇게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나를 매도하고 연행했을까?” 같은 물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따질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딸 걱정에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렸던 것이 그냥 그러려니 싶어서 조서를 다 끝내고는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나는 코이카로 와서, 이곳 볼리비아에 와서 한층 더 지독하게 나에게 실망하고 있었다. 보다 자유롭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와서 한다는 것이 아집에 얽매여 옮짝 달싹 못하고, 좁아터진 마음을 변명하기 바빴으니까. 매사 볼품없는 행동들 뿐이어서 나는 내게 좌절하고 있었다.

근데 어젯밤만큼은 조금 숨이 쉬어졌다. 그래도 아예 마음이 자라지 않던 건 아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손톱만큼이라도 자라고는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 아주 조금 좋아졌다.

내 괴로움보다 누군가의 어려움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겠다. 내 괴로움만 보기 급급하여 누군가의 어려움을 당연하게 외면하는 일이 조금씩 줄어간다면, 그거면 기쁘겠다. 그만한 여유가, 그보다 더 큰 마음이 내게도 생긴다면 정말 기쁘겠다.

나는 어제 잠시였지만, 꽤나 피곤한 일을 겪었고, 그 덕분에 꽤나 유쾌할 수 있었다. 내게 아주 조금이나마 자신이 생겼다. 이곳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헛된 날만 보 내 것은 아니었다.

‘개도 나이를 먹으면 아무나 보고 짖지 않는다던데, 그보다는 나아야겠지.’ 경찰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혼잣말만 중얼거렸다.

해치지 읺아요. 저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볼리비아에서 김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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