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by 서량 김종빈

생각을 해봤다. '정말 사랑이었을까?' 이제와서 이러는 것도 참 웃기긴 하다. 이미 애엄마가 된 예전 연인을 찾아간다거나, 내게 아프고 쓴 기억만 잔뜩 안겨준 사람을 찾아간다거나, 그도 부족해서 탄자니아까지 날아갔다 와놓고서는 이제와서 '정말 사랑이었을까?', 자칫하면 뺨 맞을 소리다.

종헌이는 내게 그랬다. "네 사랑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냐!"라고 말이다. 그놈의 상사병 때문에 죽니 사니 하는 걸 보면 완전히 아닌 말은 아닐 텐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녀석 앞에서는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지영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듯도 했으니까. 오랜 시간 만나던 사람도, 전부를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도, 서로에게 너무나 간절했던 사람마저도 헤어지면 그게 다였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 사랑했었지만, 사랑은 아니었구나.' 같은 헛소리만 되뇌었다.

아마도 지영씨는 종헌이를 사랑했을 거다. 하지만 사랑은 아니었겠지. 그래서 결국은 사랑하다가 무너져버린 거겠지.

종헌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카페에 앉아서 빨대로 이미 다 마시고 비어버린 컵만 휘저었다.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채, 빨대로 컵 바닥에 이런저런 걸 그리는데 문득 누구 하나가 생각났다.

"오빠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있는 오빠 자신이 사랑하는 거지." 컵 안에는 어제들은 말처럼, 아직도 선명한 그 목소리가 있었다.

"아, 어쩌다가 내가 잊고 있었지? 나, 바보 아니야? 진짜 멍청하네. 세영이, 맞아, 세영이." 마치 유레카라도 외친 것 마냥 나는 들떴고, 덕분에 카페 안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나 같은 놈을 위해 '여러분, 이해 좀 해주세요. 저는 불치병 시한부 환자니까요.' 같은 푯말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친구지만, 직장을 아니까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친구였다. 나는 민망하기도 하여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그래도 아직 민망한 건 아는구나, 좀 더 오래 살아 보겠다고 지난 사랑들을 전부 들쑤시고 다니는 몰염치주제에 아직도 민망한 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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