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by 서량 김종빈

“누나, 잘 지냈죠? 애는 잘 크고요? 형님은 열심히 일 다니시고?” 내게 세영이와의 접점은 꽤나 많았다. 대학시절 알고 지내게 된 누나들과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었고, 그 누나들은 세영이와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누나들 중 한명에게 세영이 연락처를 물을 생각으로 전화를 했다.


“어, 종빈아, 어쩐 일이야? 잘 살지?”, “그럼요 저야 잘 살죠, 누나, 근데 세영이 연락처 알죠?” 나는 안부를 묻는 중이 덜컥 세영이에 대해 물었다. 묻고서도 좀 우스워서 피식. “와, 이야, 오” 누나는 내 질문에 대답은 않고 연신 감탄만 해댔다. “야, 역시 종빈이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하긴 10년이 넘었는데, 너도 무뎌질 만하지. 야, 그래도 네 입에서 먼저 세영이 이름이 나올 줄을 몰랐네.” 누나는 장난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마 눈 앞에서 누나의 표정을 보았더면, 두 눈이 반짝반짝했을 거다. 왜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 전 기대감 가득한 눈 말이다.

“에이, 누가 들으면 제가 일부러 이야기도 안 하고 산 것처럼 알겠어요. 누나, 요즘 심심하죠?”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누나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러셨어요? 우리들이 종빈이 연애 코치해준다고 정말 그 고생한 거 생각하면, 니가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답답했는데, 애 봐라.” 나는 정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래?” 누나는 정말 모르냐는 듯 내게 물었다. “너 정말, 잊은 척하는 거니, 정말 잊은 거니, 아니, 아예 모르는 건가?”

“종빈아, 이 누나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게,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청년이 살았답니다. 근데 그는 연애가 좀 서툴렀어요. 사랑도 잘 모르고 연애도 몰라서 결국에는 연인과도 헤어지게 되었죠. 그러자 그 청년은 상심에 빠졌죠. 하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누나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술을 몇 잔 마시더니, 갑자기 이기지도 못할 만큼 마셔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청년은 대패삼겹살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불판을 앞에 두고 울기 시작했어요.”, “어, 잠깐만 누나.”, “더 들어봐.”

“그리고 청년은 울며 이야기했지요. ”사랑이 뭔데,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건데? 내가 뭘 변한 건데? 내가 어떻게 해야 그게 사랑인 건데? 대체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게 뭔데? 또 그게 뭐 그렇게 잘못인데? 이게 나야, 원래 이게 나라고,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널 만나려고 변한 거야. 하루 온종일 니가 해달라는 대로 했는데, 그게 좀 소홀했다고 변한 거냐?”라고 말이죠. 자리에 함께 있던 누나들은 정신도 못 차리는 청년을 집에다 데려다주고는 결심합니다. ‘이 청년 앞에서는 그날의 이별 이야기는 하지 말자.’라고 말이죠,“

“누나, 그 이야기 다른 누나들 다 알고 있어요?” 나는 누나에게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요, 그 자리에 있던 누나들이 알기만 할까요, 직접 눈앞에서 봤지요.” 누나는 대답하고는 깔깔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 속 시원해, 아, 정말 기억도 안나는 구나. 다른 애들에게도 이야기해줘야지. 봉인 풀렸다고, 시효 지났다고. 네가 이해해, 집에서 애만 보다 보면 가끔씩 자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단다.” 나는 정말 몰랐다. 그리고 이제야 누나들이 내 앞에서 이상하리 만치 세영이 이야기를 조심했던 것들이 말이다. “와, 나를 10년 넘게 깜쪽같이 속여온 거예요? 다들?”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누나가 대답했다. “야, 속이긴 누가 속여. 전부 다 널 위해서였단다.”, ‘아, 말이나 못 하면.’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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