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단순한 이동수단,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전거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일지도 모르다. 또 누군가는 운동을 떠올릴 것이다. 내게는 세네갈에서 그간 함께하며 정든 친구였다. 그러니까 자전거, 여기 사람들이 쓰는 불어로 벨로(Vélo)는 내게 친구였다. 전라도 사투리로 하면 언뜻 “별로”라고 들릴 수도 있다만, 내 삶에서는 “별로”가 아닌 가장 소중한 이야기였다.
세네갈에 가기 전, 한국에서 나는 회사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냈었다. 주로 자가용을 이용했던지라 자전거를 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가끔 아내 심부름으로 집 근처 시장에 나갈 때 타고 갔던 일 정도가 다였다.
그런 생활을 뒤로하고 온 세네갈, 이곳의 도로환경은 꽤나 인상 깊었다. 오래되고 낡은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 정신없이 끼어들어 달리는 오토바이, 거기에 말이 끄는 마차까지 섞이고 엉켜서 움직이는 곳이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몇몇 도로만 포장되어 있을 뿐, 대부분의 길은 비포장의 흙모래 길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이곳에서는 자전거를 타야겠다.’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사실, 코이카로 온 입장에서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타고 다닐 수도 없으니, 자전거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길이 멀기도 멀고, 다른 선택사항도 없어서 타기 시작했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내게 “조심히 타고 다니셔요.” 라며 걱정을 해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아도 참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 뒤부터는 내 생활의 많은 것들이 자전거와 함께였다. 오죽하면 자전거를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내가 파견된 기관 바로 옆의 집을 놔두고 5km도 더 되는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내부공사도 잘 안 되어있는 집을 말이다.
여담이지만 집안 내부는 계약 이후에 손을 봐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세네갈에서 약속이란 “인샬라”, 신의 뜻, 알라의 뜻. 세네갈의 알라신은 꽤나 느긋하셨는지, 아니면 많이 바쁘셨는지, 약속이 이루는데 반년이 걸렸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돈으로 13만원정도 하는 중고 자전거를 사는 건 월 생활비 60만원인 입장에서 적은 비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답답할 적마다 자전거를 타고 5km 정도 떨어진 인근 대서양(뤼피스크) 해변으로 달려갈 수 있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니, 가치를 떠나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 위였기에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길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자전거를 달리다 보면 열악한 현지인의 삶과 그들의 불편한 환경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대서양을 앞에 두고 만끽했던 자유, 집에만 있었다면 볼 수 없었던 길 위의 삶, 어렴풋하지만 어디까지고 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열기까지 모두 자전거에 있었다.
내가 거주한 세네갈 끄르마사(KeurMassa)는 수도 다카르에서 20Km 떨어진 시골마을이었다. 단전과 단수가 빈번이 일어나는 곳이었지만, 내 어린 시절 시골생활과 다르지 않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하루 왕복 10킬로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다 보면 학창 시절 자전거를 타고 학교 다녔던 그때로 나를 돌려놓은 것 같았다. 세네갈에서 어린 시절 향수를 마주하다니, 참 얄궂기도 하지.
일은 자발적 활동이 주된 곳이어서 부담이 덜 되었다. 도서관에서 컴퓨터와 와이파이 환경을 구성하고 지원하는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어 도서대여 프로그램과 바코드 방식의 도서 관리체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주중에 이것저것 하다가도 주말이면 다시 또 자전거였다.
어찌 보면 학교에 봉사활동했던 시간들보다 주말이면 끄르마사(KeurMussa) 인근 지역을 Vélo로 여행하고 세네갈 현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더 행복했었던 것 같다. 보통은 차위에 자전거를 싣고 도시와 도시를 이동했다. 그때마다 요금은 나와 자전거, 두 사람분을 내야 했지만 그래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풍경이 있어서였다.
끄르마사(KeurMassa), 라끄로즈(Lac Rose), 뤼피스크(Rufisque) 같은 해변 마을들, 띠에스 끄르무사(KeurMussar), 꺄올락(Kaolack), 생루이(Saint-Louis), 리차드톨(Richard Toll) 같은 도시들. 처음에는 이름도 생소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하나하나가 나의 삶이고 내 자전거의 이야기였다.
매 순간이 처음이었던 여행들, 아침이면 골기를 가르며 달려 간 학교, 내리쬐는 햇볕 아래 땀으로 흠뻑 젖어도 기쁜 날들이 풍경에 고스란히 있었다. 주말에 멀리까지 나가면 매연 뿜는 자동차에, 요란한 오토바이, 덜거덕 거리는 마차가 저만치를 앞서 달렸다. 달리는 길 위 또한 분명 삶인지라, 때때로 우리는 멈추기도 했다. 넘어지거나 혹은 고장 나거나, 또는 다시 넘어지거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낡은 자전거 가게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것보다야 이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아마도 우리는 삶이 그치기까지 달릴 테지. 그러니, 고장도 넘어지는 일도 삶일 테지.
이렇게 50대 새로운 출발선은 세네갈에 있었다. 우연하게도 온 세네갈이었고, 우연히 만난 자전거였지만, 내게는 응원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삶도 길 위도 우연과 우연이 겹치는 덕분에 좀 더 달려볼 맛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