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성실한 일상 속에 있었다. 왜 몰랐을까, 아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몰랐다.
그리고 성실한 일상 속에서 차곡히 쌓여진 꿈은 나이를 먹더라도, 재능이 없더라도, 쉽사리 바래지지 않는다. 설사 동경으로 시작했다고 하여도, 너무 허무맹랑하더라도 우스워지지 않는다.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성실함이 보답받지는 못하기에, 꿈은 의심받고, 조롱받는다. 그러면 지치고, 이윽고 성실함은 다른 것들 앞에서 약소하고 부족하게만 보인다. 성실함을 잃어버린 꿈은 점차 재능이나, 운명 같은 것들에 매달리어 위태로워진다.
지난 동안 써 왔던 어쭙잖은 이야기들을 읽다가 생각했다. 내가 써내려 온 활자들 속에는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대부분은 어째서 내게 재능이 없는지 같은 하소연들이었다. 그리고 얼마는 재능이 없는 내가 어째서 꿈꾸냐며 자조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거기에는 재능이 없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냐는 투정도 있었다. 아쉽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이야기를 좀 더 많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재능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명 같은 것은 더더욱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성실함은 내 것이었다. 얄궂은 일이다. 내 것은 놓고 내가 어쩌지 못할 것에 매달려 있었다.
겁이 났었다. 지치기도 지쳤다. 계속해서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안 되면 어쩌지 하고 겁이 났었다. 가끔은 계속하는 것이 바보 같고, 부질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안함을 억눌러가며 계속했는데 꿈으로부터 떨어지거나, 거절당하거나, 밀려나거나 하면 혼잣말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역시, 재능이 없나 보다.’, ‘나는 참 운도 없지.’, ‘해도 안 되나 보다.’
성실하게 했음에도, 꾸준히 꿈을 좇았음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힘이 빠지는 일이다. 서럽고 지쳐서 관둬버리고 싶어 지기도 한다. 성실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음에도, 때때로 살면서 성실함이 결과를 이뤄내는 것을 봐왔음에도 말이다. 결과가 없는 성실함은 부질없어 보이고, 서운하기까지 하다.
재능과 운을 가지는 이의 한걸음이 나의 백 걸음보다 앞설 때, 그다음 나의 백 걸음도 다시 또 뒤처질 때, 나는 다음의 백 걸음을 걷는 것이 두려웠다. 그 마저도 뒤쳐지고 나면 걷는 것의 의미조차 의심하게 될까 봐 그게 무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꿈은 성실함에 있었다. 더디고, 바람대로 되지 않아도, 걷는 수밖에 없다. 한 발짝이 늦어 모든 것이 허사가 되는 일이 다반사라도, 어떤 날 한 발짝이 빨라서 그간의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계속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겠지.
어떤 날은 지겨워지고 바보 같아지더라도, 설령 전부 의미 없어지더라도, 매일같이 성실하고 꾸준할 수는 없더라도, 결국 꿈은 성실함에 있다. 모자란 한걸음으로 모든 것이 아흔아홉 걸음이 의미를 잃어도, 아흔아홉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