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 되면 기분이 묘하다.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가 유독 더한 까닭은 12월이 내가 태어난 달이라서 그런 것이라. 12월이 되면 어쩐지 나이를 몰아서 먹는 기분이 든다. 생일이라고 나이를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12월이 지난다고 또 나이를 먹고, 이렇게 남들보다 두배로 나이를 먹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어쨌거나 매년 이렇다 보니 은근히 부담이 된다. '대체 이 나이를 먹도록 나는 뭘 한 거지.' 뭔가 대단한 것까지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급하고 무섭다. 그렇다고 딱히 이거다 하는 것도 없다. '나이를 먹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 같은 것도 없어서 그냥 막연히 겁만 집어삼키고 마는 거다.
그래서 올해는 좀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는 의미에 대해서, 설령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 나름의 의미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강아지가 생전 처음 거울을 보게 되었는데,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짖어대는 장면이었다. 좀 바보 같았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고, 짖어대고, 도망쳤다가, 다시 조심스레 와서 슬쩍 살펴보기도 했다. 정말 바보 같았다.
강아지는 그렇게 한참을 분주하게 굴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거울 속의 강아지 한 마리가 자신임을 깨닫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말이다. 참 바보 같았다. 하루씩이나 걸려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다니 말이다.
하지만 솜털 보송한 녀석의 바보스러움도 나보다는 나았었다.
내게는 자기혐오가 있었다.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드문드문 내 모습이 무언가에 비춰지면 놀라거나, 겁먹거나, 부정했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도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서 그저 미워하기 바빴다.
그런데 그렇게 무지하고 사려 없던 자기혐오가 이제 끝났다. 놀라고 화내고 도망치고 다시 돌아와 눈치를 보다가, 오랫동안 그렇게 비춰진 내 모습에 익숙지 않아하다가, 이제야 조용히 정주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살펴보면 괜찮은 구석도 있었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것들도 있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멋진 모습도 있었다. 잘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더할 나위 없었다. 물론 부족하고 모자란 것도 시간을 두고 살필 수 있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무리하지 않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적어도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내가 내 모습에 익숙해지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꽤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말이다.
다행이다. 좀 늦었지만 삶을 중턱에 와서라도 차분히 나를 볼 수 있게 되어서 말이다. 매년 12월마다 두 살씩 나이를 몰아서 먹은 보람이 있었다.
나를 작게도 크게도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를 무작정 미워하지도, 나를 무턱대고 사랑만 하는 일도 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해가 몇 번이고 바뀐 뒤에야, 이제서야 겨우, 나의 계절도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