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보다 좀 더 건방졌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여행에 꽤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여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나는 여행을 그리 길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방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흉내 내 본들 실상은 소심하고 예민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가신 인간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여행을 싫어하지 않지만, 여행 없이도 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휴일마다 어디 나가는 것조차 꺼려하며 집 거실에 늘어져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그래도 그나마 가고 싶은 여행지가 하나 있다면 북극 정도, 그 말고는 가봤거나 그다지 가고 싶지 않거나 할 뿐이었다.
오죽하면 북극마저 다녀오면 더 이상 아무 곳도 가고 싶지 않을까 봐, 나이 육십이 되기까지 북극을 안 가고 아껴놓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더없이 여름다운 오늘, 해가 부서져 내리는 강남 한복판에서 다시 또 덜컥 여행을 생각했다.
나 : "사모에? 사모이? 그 있는데 사모, 뭐라고 하는데요. 저 다음 여행은 거기를 가려고요."
K님 : "사모아요?"
나 : "아, 맞아요. 사모아! 그리고 그 근처 바르투이? 바투누아? 바, 뭐라고도 있는데 거기도 갈 거예요."
K님 : "바누아투요?"
나 : "맞아요. 거기도 갈 거예요!"
나는 혼자 잔뜩 또 들뜨고 말았다. 자기가 가고 싶은 여행지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제에 변덕에 마음만 앞서는 여행, 그게 또 시작되었다.
어떨까,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대체 이놈의 변덕은 또 뭔지 그것도 모르겠고, 온통 모르겠다. 아는 거라고는 온통 모르겠다는 것만 알겠다.
"이제는 여행이 지겹다."며 당분간 여행은 생각도 않겠다던 말이 채 공중에 다 흩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사모이인지 사모아인지를 가겠다고 한다.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될 때쯤에는 이 어중간한 변덕도 다 끝날 줄 알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설프고 어정쩡한 춤사위로 살아가고 있다.
이토록이나 여전한 것이 반갑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혼자 피식, 피식. 하지만 그 변덕 덕분으로 나는 또 어딘가를 가고, 달리고, 넘어지고, 아프다, 또 뭔가를 알아채겠지. 전과 같이, 혹은 전보다 더하여.
"나는 어떤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다." 이렇게 되면 좋겠지만 안 되는 걸 무리하지는 않기로 한다.
나는 나를 확신하기에 여전히 모자라고 연약하고, 어리석으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한동안 사모아섬을 떠들어대다가, 그곳을 다녀오는 것으로 족하련다.
자유로운 방랑자가 되었든, 예민하고 속 좁은 촌부가 되었든 뭐든 간에 무리는 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에 애쓰지는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