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탕비실 옆에 방이 하나 있다. 방에는 오락기가 2대 있는데, 그냥 작은 가정용 오락기가 아니라, 진짜 오락기,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는 오락기가 있다. 심지어 이 오락기들은 동전을 넣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는다.
어릴 적 나는 오락실에서 살았었다. 다들 그맘때 그렇듯, 나 역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오락실에 갔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혼을 내시고는, 못내 내가 안쓰러웠는지, 부족한 살림임에도 중고 게임기 하나를 사 주셨다.
하지만 그 뒤로도 나는 가끔씩 오락실에 가서 오락을 했다. 가정용 오락기로는 할 수 없는 게임들이 오락실에는 매달 생겨서,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내게 간절하고 어쩔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오늘 나는 야근을 하던 중,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다가 변덕이 났다. 오락기 앞에 앉아보니 오락기 안에 게임이 수천 개나 있다. 게임들을 뒤적거리며 예전에 즐겨하던 게임을 기어코 찾아냈는데 흥분이 전 같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렇게나 간절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게임기는 커다란 숫자를 거꾸로 세어가며 내게 더 해볼 것을 권하는데 나는 동 하지도 않다니,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그 당시에만 간절한 것들도 있다. 그때는 그게 미치도록 갖고 싶었고,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간절한 것들도 어쩌면 시간이 좀 지나면 또 무덤덤해 질지도 모르지.
어쩌면 나중에 가서는 간절한 마음이 간절해지는 이상한 날도 올지 모르겠다. 더 이상 무엇으로도 간절해질 수가 없어서, 무엇에라도 간절해졌으면 하는 이상한 날.
간절하지만 다 가질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간절했던 시절은 아팠지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절뚝거리는 마음으로 끙끙거리며 살고 있지만, 이것도 다행이지 않나 싶다. 무엇으로도 아플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떤 것으로 살아있음을 더듬어보아야 하는지 벌써부터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더 가지지 못하고, 더 편하지 못하고, 더 좋은 사람일 수 없어서 나는 여전히 아프다. 더 좋은 문장 한 줄이 없어서 굶주리고, 흠모하는 이의 마음을 터럭 한 줌도 손에 쥘 수 없어서 목마르다. 어린 시절 먹고 싶었던 비싼 과자를 실 컷 먹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말이다.
멈춰놓았던 야근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다.
‘아! 아까 오락기 위에다 커피를 놓고 왔구나.’
내 정신이 이렇다. 그런데도 아직 이런저런 것들로 저릿한 통증이 이는 걸 보면, 나는 용케도 아직 간절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