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당하지 않는 무난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딱히 깊은 의미에서는 아니고, 푸념이다. 근래 거절당하는 일들이 많아서 좀 피곤이 쌓이는 탓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것을 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정말 별 다른 것을 하지 않아서, 별 볼일도 없었고, 그래서 별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던 날들.
요즘처럼 별의별 소리에 휩쓸려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나는 정말 그런 날이 있어나 싶을 정도로, 무난한 날들이었다.
그랬는데 요즘은 거절의 연속이다. 나의 모자람이 무엇보다 큰 원인이다. 그리고 전 같으면 정말 거기서 생각하기를 멈췄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여전히 모자랐던 얼마 전 내가 생각났다. 그럼에도 무난하게 살던 나도 생각났다.
어쩌면 말이다, 무난하다는 건, 거절 없는 순간만 가득한 삶이라는 건 사실은 별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그리고 삶에 거절이 드문 드문, 혹은 연달아 보인다는 건, 지금 내가 뭔가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물론, 어떤 굉장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거절 한번 당하지 않고 살겠지만, 그건 나 같은 사람하고는 먼 이야기다. 나 같은 평범에 조금 못 미치는 사람들은 무난한 게 이상한 걸지도 모르겠다.
산을 오르는 일이 몇 날 몇 밤이 지나도 거뜬할 리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에 내 마음이 쓰이지 않을 리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 손쉬울리는 없는 거지.
나는 지금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매일 할 수 있는 것만 하며 무난하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항상 있던 자리에서 꼼짝 않고 지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가 않아서, 종종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던져놓는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다그치는데, 사실은 그게 거절이었다.
거절은 내 별 볼일 없는 삶을 별 달리해 줄 신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희망하자면, 거절이 잦아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지금 별다른 무언가에 꽤나 가까이 왔다는 신호였으면 한다. 세상에는 거절이 꽤나 많다. 내가 부족한 탓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길었던 무난함들이 조금, 민망해졌다. 부족한 내가 언제나 옳다고 환영받는 세상도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