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레 태풍이 지나가고 나자, 하늘이 바뀌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만 쳐다보기에는 아까울 만큼 괜찮은 하늘이었다.
폭염이니, 장마니 하며 한참이나 더 있을 것 같던 여름이 이런 식으로 물러나다니 정말이지 얄궂다. 지난밤 고시원 베란다에서 바람이 밤을 흔들어대는 건 얼핏 봤지만, 잠든 사이 다 지나갔을 줄이야.
출근길 선선한 공기, 개인 하늘 이런 것들을 보며 걷는데 '이렇게 또 계절이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하루 종일 일하면서도 마음이 딴 데 가서 일도 깨작깨작거렸다.
간 밤의 바람들은 어디까지 갔으려나, 멀리까지 갔을까, 아니면 슬그머니 사라졌으려나.
고약하다. 이렇게 한바탕 뒤집어놓은 뒤에라야 간신히 변하는 계절이라니, 유치하다. 뭐가 그리 요란할까.
굳은 마음도, 고약한 고집도 차츰차츰 연한 빛을 띠면 참 좋을 것을.
쉽사리 흔들리는 감상도, 산만하기만 한 욕심도 이제 힘 좀 빼면 좀 낫겠는데.
어디라도 아프거나, 뒤틀리고 뒤집혀야 변하는 계절이라니 고약하고 유치하다. 어두운 밤, 제 성질대로 흔들어 놓고 나서야 변하는 극적인 연출도 이제 질릴 만도 한데 말이다.
아직은 되지 않지만, 여전히 쉽지 않지만 다시 한 번 소망해본다. 한 걸음, 그 걸음 위에 또 한 걸음 놓아두는 것으로 변할 수 있기를.
세상이 너무 느려도, 혹은 너무 빨라도, 나는 아랑곳 않고 가만가만 걸었으면 좋겠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걸음으로, 시속 4km 정도로.
바람이 되려 하지도 말고, 산이 되려 하지도 말고, 될 수 없는 것이 되려 하지도 말고.
나에게, 그리고 당신, 또는 누군가에게도 계절이 지극히 개인적인, 몹시도 주관적인 속도로 지나가기를 소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