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빵이 들어있는 상자를 허겁지겁 열다가 손을 베였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베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한참 동안 베인 줄도 몰랐으니까요.
빵 상자를 열어서, 와구와구 쩝쩝거리면 빵을 먹어치우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데 '따끔'. 그제야 베인 걸 알았습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무디고 멍하고, 제 몸 다친 것도 모를 때가 있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만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니,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구요. 정말로 보면 다치고도 다친 줄 모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적어도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올해 정신없이 바쁘게, 그래도 꽤나 무탈하게 지낸 줄 알았는데,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아서요.
하루를 편히 보냈는데 갑자기 마음이 뻐근해진다거나, 잘 지내다가도 당장 덤벼들 것처럼 화를 낸다거나,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러라고 넘길 것도 기어이 쫓아가서 엎어놓으려고 했다거나, 그런 것들
아마 저도 모르게 아팠던 것 같습니다. 병이 나서 제 마음도 추스르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무언가가 고울 리 없었겠죠. 갑자기 북극에 가고 싶다거나, 한 달에 한 줄도 끄적이지 못한다거나, 사람이 지겨워지거나 한걸 보면 분명 아팠던 거겠죠.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별 수는 없지요. 또 어디선가 베일 것도 아닌 것에 베이고, 아픈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굴다가, 발작처럼 나뒹굴겠지요. 말이라던지 마음이라던지, 사람이라던지, 어떤 것으로든 말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올해가 갑니다. 새해라고 해봤자 딱히 변할 것도 없지만, 기적 같은 것은 기대도 않지만 그래도 조금 욕심을 부려 봅니다.
새해에는 부디 다들 베이면 베인 줄 아는 예민함을 가지길, 가능하다면 베일 것을 피할 줄 아는 민첩함을 가지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무심함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서로를 마구 베어 할퀴는 일이 없기를.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잔뜩 남깁니다.
게을러빠진 탓에 올해 결국 책으로 엮지 못했거든요.
토해내듯, 올해 마지막 발작을 늘어놓습니다.
그럼, 이르지만 저는 오늘 일찍 잘 거니까
미리 인사드리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Que el próximo año sea excelente. para mi, ti y todos.
Que no les falte salud, amor y trabajo.
Feliz año nuevo.
사진, 캘리그라피 김미진.
발작 김종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