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소소로운 #3.
온도차로 부서지는 것들이 있어.
가끔 정말 친한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도, 대화가 붕떠버리는 순간이 있다. 상대방이 뭔가 굉장하다는 투로 자신의 경험이나, 얼마 전에 본 영회, 책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전혀 공감 못하는 식의 상황이다.
그 이의 감상이나 취향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닌데도, 온도차가 너무 커서 어쩔 도리가 없는 지경이 돼버리는 거다. 그 붕떠버린 순간들을 보고도 계속 이야기를 하려 하면, 나중에는 지겨워지기까지 하는데, 그 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이런 것들은 취향 차, 문화 차이 같은 이름으로 이미 불리고 있지만 나는 내 편의대로 이 모든 걸 한데 묶어서 낭만의 온도차라고 부른다.
언뜻 달라 보여도, 내 주변의 관계들은 결국 온도차, 각자의 낭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냉기가 문제였으니 싸잡아 이야기할 수밖에.
왜 있지 않은가,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이야기하는 중에 군대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들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것을 종종 보았을 거다. 경험의 유무는 각자의 낭만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번은 그런 자리에서 군대를 다녀온 여자가 함께 이야기하며 달아오르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남자가 혼자만 조용히 별말 없는 것도 보았는데, 겪은 일들에서 뿜어지는 열기는 정말 굉장하구나 한번 더 생각했다.
하지만 겪지 못한 이에게 그런 열기는 버겁다. 자칫 목이 타게 만들고, 입술을 바짝 마르게 만든다. 더욱이 그 겪은 것이 뜨겁고 오래 지속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단순히 온도차로 붕 떠버리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삶에서 열정을 잔뜩 쏟아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을 조심한다. 여러 번의 실패 속에서 몇 번이고 일어나 결국에는 영광을 쟁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대단한 것들을 폄하하는 것도, 비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그 온도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네 직은 목욕탕마저도 열탕과 온탕, 냉탕이 나뉘어 있는데, 그들의 열기를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는 건 너무한 처사다.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이렇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이나 80년대나 회사 부장님은 예전 이야기를 자랑하고, 성공한 사업가는 자신이 손에 거머쥔 가치가 얼마나 굉장한지 이야기하기 바쁘다. 회사가 여전히 힘든 공간인 이유다. 학교는 여전히 고작 서너 살, 많아야 대여섯 살 믾은 선배들이 어깨에 힘주고, 연인들을 별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 것들로 심하게 다투는 것도 온도차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려니 할게 아니다.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만일 누군가가 나를 원치 않는 열탕에 하루 종일 가둬놓는다면, 그렇게 몇 년이고 둔다면 그건 폭력일 거다.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고.
견디기 힘든 열기의 낭만으로부터는 도망쳐도 괜찮다. 부디 각자의 온도대로 살게 하자. 열정과 냉정을 운운하는 것이야 자유지만, 당신만큼 뜨겁지 않다고, 열정이 없다느니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당신의 낭만은 당신의 낭만일 뿐이다. 그것에 내 낭만이 함께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각자 자기만의 낭만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각자의 온도대로 살면 될 일이다.
나는 그래서 낭만의 온도차가 느껴지면 도망을 친다. 온 마음이 바싹 말라비틀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