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소소로운 #6.
야근은 적당히 늘어지게 하는거야.
야근 중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뭐라고 끼적이고 싶어져서, 메모장을 열었습니다. 할 일이 정말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야근이 구만리인데,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탓에 뭐라도 해야 합니다. 신기하지요, 딱히 게으름을 피운 것도 아닌데, 할 일이 계속 늘어갑니다.
늘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조만간 쏟아져 내리겠구나. 쏟아져 내리면서 나도 휩쓸리겠구나.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래도, 쏟아져내리더라도 누가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위안입니다.
힘을 내볼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기로 합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운 적도 없지요. 그런데도 일이 쌓이고 있으니, 힘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그래서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 힘껏 달린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이렇게 끄적거리는 동안에도 일은 쌓여가겠죠. 잠자는 사이에 대신 일을 해주는 요정 같은 건 기대도 않습니다. 아니, 거짓말입니다. 솔직히 조금은 기대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정신 나간 요정이 사무실, 제 자리에 앉아서 야근을 대신해주는 기대를 좀 했었습니다.
나중에 꼭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힘내고 싶을 때만 힘내도 되는 세상 말입니다. 내키지 않는 일에 힘내다가 정작 좋아하는 일에는 어정쩡하게 구는 건, 나중에 후회가 많이 남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 힘내지 않기로 합니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일에는 힘내지 않을 겁니다. 쏟아지든지, 말든지.
뭐라 그르든가, 말든가, 이런 돈도 안 되는 이야기를 끼적입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이런 것들에 힘내기로 합니다. 제가 야근을 안 해서 문제가 생기는 일이라 해봐야 뭐, 얼마나 큰일이 날까요? 사소한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사소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사소해서 좋은 점이 하나 또 늘었네요.
아무튼, 적당히 하는 시늉 하다가 내팽개쳐버릴 겁니다. 당연히 힘도 안 낼 겁니다. 힘내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을 겁니다. 힘내고 말고는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산더미 같은 일들이 무너지고 쏟아져내려도, 저는 힘 안 낼 겁니다. 저는 제가 힘내고 싶을 때 힘낼 겁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행복할 때 행복하다고 할 겁니다. 하고 싶은 것에 힘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럴수록 힘내야지, 그래도 웃어야지, 이 정도면 행복한 거야.”
이런 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을 겁니다.
아, 힘껏 뭔가를 쓰고 나니 좀 행복해지네요. 이제 또 마음도, 영혼도 닫은 채 야근을 이어가야겠습니다. 물론 힘은 안 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