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소소로운 #9.
시야가 좁은게 아니라, 쓸데없이 가까운 거야.
by
서량 김종빈
Apr 28. 2021
거리를 두어야만 보이는 것들에 있다. 제삼자가 되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멀찍이 앉아서,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 멈춰서 기다렸다.
당신에게 휘말리면 당신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 우리에게는 그만한 거리가 필요했다. 당신이 울거나, 웃거나 하는 표정이야 선명하게 보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신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서있는지 혹은 앉아있는지 그런 것들을 알아야 했다.
차갑다느니, 벽이 있다느니 뭐라고 말한들 변명조차 않았다. 말 한마디 섞지 않은 채로 온전하게 당신을 들었다. 당신이 문장을 내뱉고, 숨을 들이쉬는 순간까지 다 듣고 나서야, 당신을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신이 섭섭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정성껏 당신을 보았고, 들었다. 당신에게 향하고 기다렸다.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신에게 휘말리지 않고 휩쓸리지도 않은 채로, 당신을 기다리고 싶었다. 우리의 거리는 정중한 예였고, 정성스러운 기다림이었다. 차갑다고 말하는 당신이 알아차려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그 또한 알아주었으면 했다. 때때로 당신에게 휘말리고 휩쓸려 정신을 잃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는 걸. 당신의 표정 하나하나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하고 싶었다는 걸.
하지만, 그런 진심보다 더욱 진심이기 위해 우리에게는 거리가 필요했다. 고백하건대, 그 모두가 당신의 전부를 한눈에 담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음색을 듣기 위해서였다.
keyword
당신
좋은글
매거진의 이전글
사사로운, 소소로운 #8.
사사로운, 소소로운 #10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