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소소로운 #11

작고 느리고 재능 같지 않은 재능이라서 좋은 거죠.

by 서량 김종빈

갈증이라는 건 재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뭐라도 한 줄 쓰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써야겠다 싶어서 억지로 끄적여도 결국 지우고 맙니다.


대단한 걸 쓰겠다는 것도 아닌데, 고작 하소연뿐인 일기도 담담히 써내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나니 '이제는 정말 안되나?' 같은 생각도 할 정도로 말이죠.


저는 요즘 화가 많아졌어요. 아니, 사실은 항상 화가 나있죠. 제가 하는 이야기는 이제 온통 재미없고 뻔한 이야기들 뿐이죠. 주식이라든지, 부동산이라든지, 비트코인이라든지 그런 것들뿐이죠. 그런 것들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삶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훨씬 더 많을 텐데 그런 것들만 이야기하게 되다니 사실 좀 실망스럽죠.


그래도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는 그래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랑은 뭔지,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그런 답도 없는 것들을 밤새 묻고 떠들고 웃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못하죠.


그래서 갈증이 생겼습니다. 뭐라도 쓰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게 되어 차곡히 갈증이 쌓여가고 있지요.


혼자 속으로 다독입니다. "조금만 더 해보자. 지금 하는 일들을 조금만 더 해보자." 어쩌면 지금 하는 일이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할 수도 있겠죠. 삶에 깊이나 향기를 더하지도 못할 수 있을 테죠.


뻔한 일상과 화난 사람들, 부끄러움을 고민할 시간도 사치스러워지는 곳에서 저도 별반 다르지 않게 될까 봐 겁도 나고요.


사실을 말하자면, 지난 몇 년 동안 기껏 치장하고 분칠 한 인품이 훤히 까발려지고 바닥을 드러내는 매일이라 좀 좌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일 년간 좌절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 마저도 신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쌓여가는 갈증을 가만히 두고 보려고 합니다. 터질 때까지, 한껏 터져서 저도, 세상 누구도 어쩌지 못할 때까지 보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아무리 바보라도 알겠죠.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오늘 월터 미티의 이야기를 다시 또 봤습니다.

갈증은 마지막까지 주저하는 이가 결국 해버리게 만들죠.


애석하게도 용기가 없는 저는 대신할 것이 필요합니다. 무모함조차 없는 저는 대신할 것이 필요하지요. 지금은 그걸 위해 내일도 그냥 하기로 한 걸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게 이유라면 조금 설명이 될까요.

적어도 저는 차곡히 쌓은 갈증들이 끓어 넘쳐

다 집어삼키기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이야기의 모든 부분이 절정부일 수는 없는 거니까요.


사실, 저만큼 사사롭고 소소로운 사람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재능이 있을까 싶습니다. 느리고, 작고, 재능 같지도 않은 재능.


부디, 이 설익고 어설픈 변명이 당신에게도

조금은 그럴싸하기를 바라며 이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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